보험업법,상가ㆍ주택임대차보호법,신원보증법,공정거래법 개정안….

국회 법제사법위원회에 장기 계류 중이거나 지난 17대 국회가 끝나면서 폐기된 경제 관련 민생 법안들이다. 법사위를정쟁의 무대로 인식한 여야 의원들이 의도적으로 법안 심사를 미루고 외면한 결과다. 법사위는 상임위원회에서 의결된 법안을 본회의 상정에 앞서 심의한다.

법사위가한해동안폐기하는법률은전체의 70%에 달한다. 특히 각 상임위원회가 합의해 처리한 법안의 내용까지 수정하는 경우도 적지 않다. 법사위의 기능을 ‘체계와 자구 심사’라고 모호하게 규정한국회법(86조)을악용한 것이다. '제왕적위원회' 라는 비판과 함께 기능을 손봐야 한다는 지적은 그래서 나온다.

13일 한국경제신문이 여야가 원 구성 협상을 통해 상임위원장 자리를 배분하기 시작한 지난 13대 국회 이후 법사위의 법안 폐기율을 조사한 결과 △13대 22.8% △14대 36.8% △15대 46.8% △16대 59.8% 등으로 가파른 상승곡선을 그린 것으로 나타났다.

야당 의원이 법사위원장을 맡기 시작한 17대 국회 때는 폐기율이 무려 74.2%에 달했다. 회기의 절반이 채 지나지 않은 18대 현 국회도 이미 폐기율이 37%를 넘었다. 심지어 23개 법안은 법사위에서 623일째 표류하고 있다.

경제계는 기업 활동과 민생에 영향을 미치는 주요 경제법안들이 법사위의 이 같은 '게이트 키핑'에 가로막혀 장기 표류하거나 국회 임기 종료로 자동 폐기되는 사태를 크게 우려하고 있다. 전국경제인연합회 관계자는 "공정거래법 개정안이 통과되지 않을 경우 자회사를 무조건 매각해야 하는 SK그룹은 매일 피를 말리는 분위기"라고 전했다.

현재 장기 계류 중인 대표적인 법안은 단기 연체에 지나치게 높게 부과하고 있는 금융회사의 연체 이자율을 절반 이하로 낮추는 내용을 골자로 한 일명 '연체 이자율 반감법'(이자제한법)이다.

두 법안은 제출된 지 1년 이상 결론이 나지 않았다. 보험사들이 보험상품 판매시 소비자의 소득이나 계약 목적 등을 파악해 해당 소비자의 소득이나 계약 목적 등을 파악해 해당 소비자에게 적합한 상품만 판매해야 한다는 게 골자인 보험업법 개정안도 2008년 12월 정부가 발의한 지 1년2개월 만에 정무위를 통과했지만 법사위에 가로막혀 있다.

17대 국회 때 법사위에서 3년 가까이 계류하다 상정도 하지 못한 채 국회 임기 만료로 법안이 폐기된 신원보증법은 법사위의 전횡을 드러내는 대표적인 사례로 꼽힌다. 신원보증법은 신원 보증인이 채권자로부터 손해배상에 대한 최고(催告)를 받지 않으면 이행 지체의 책임을 지지 않도록 하는 게 골자다. 보험사들이 계약 맺기를 꺼리는 15세 미만 청소년 혹은 장애인들과도 보험 계약을 체결하도록 강제한 상법 개정안도 구체적인 논의 없이 폐기됐다.

박신영 기자 nyusos@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