순간 최대 초속 9m.퍼트 어드레스를 취하면 바짓가랑이가 철렁이고 몸 중심을 잡기가 어려운 강풍이다. 이런 날씨에서는 누가 더 집중력을 유지할 수 있느냐가 승부의 관건이 된다.

국내에는 잘 알려지지 않은 세계랭킹 232위의 '무명' 마르쿠스 프레이저(32 · 호주)가 '제주 바람'을 뚫고 유럽 · 아시안 프로골프투어 발렌타인챔피언십 정상에 올랐다. 프레이저는 54홀 경기를 치르는 동안 보기는 단 두 개 기록했다. 그리고 14개홀에서는 버디를 잡았고,나머지 38개홀은 파로 막았다. 세계랭킹 7위 어니 엘스(남아공),제주 출신 양용은(38)을 무색케 하는 '바람의 챔피언'이다.

프레이저는 25일 제주 핀크스GC(파72)에서 끝난 대회에서 3라운드 합계 12언더파 204타를 기록,2위권 선수들을 4타차로 따돌리고 우승컵을 안았다. 우승상금은 약 5억4000만원.2002년 프로가 된 프레이저는 그 이듬해 유러피언투어 BMW러시안오픈에서 우승컵을 들었고, 올해 들어서는 오메가 두바이데저트클래식에서 공동 11위를 차지한 것이 최고 성적이다.

프레이저는 이번 대회에서 첫날부터 마지막날까지 선두를 유지한 끝에 우승까지 내달았다. 첫날 버디 7개를 잡고 순조롭게 출발한 프레이저는 둘째날 8번홀과 최종일 18번홀(이상 파4)에서 보기를 했을 뿐 스코어카드를 버디와 파로 장식했다. 최종일에도 프레이저는 버디 4개를 추가, 바람에 집중력을 잃고 보기를 양산한 세계적 선수들을 제치고 후반 초반 우승을 확정짓다시피 했다.

엘스는 합계 5언더파 211타로 공동 9위를 기록하며 체면을 유지했다. 세계랭킹 10위인 재미교포 앤서니 김(25)은 3언더파 213타로 김경태(24 · 신한은행) 등과 함께 공동 16위를 차지했다.

한국선수 중 노승열(19 · 타이틀리스트)이 최종일 데일리베스트인 4언더파로 선전하며 합계 7언더파 209타로 공동 4위를 기록했다. 지난달 초 유러피언투어 말레이시안오픈에서 최연소 타이틀을 차지했던 노승열은 이번 대회 3라운드 동안 언더파 스코어를 내며 최경주-양용은을 이어나갈 차세대 '주자'로 입지를 굳혔다. 상금 1억3900만원을 획득한 노승열은 한국프로골프 및 아시안투어 상금랭킹 선두가 됐다. 노승열은 1주 쉰 뒤 이탈리아 스페인 영국 미국 등의 대회에 나가 세계적 선수들과 기량을 겨룰 계획이다. 노승열은 "봄 가을에 바람이 많이 부는 고향 속초에서 라운드를 많이 한 것이 제주 바람을 극복하는 데 도움을 줬다"며 "볼을 멀리 날리기 때문에 앞바람이 불 때도 다른 선수들보다 두세 클럽 짧은 클럽으로 어프로치샷을 할 수 있어 유리했다"고 말했다.

서귀포=김경수 기자 ksmk@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