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중자금이 은행권으로 몰리고 있다. 주식시장이 조정받고 있는데다 부동산시장에서도 총부채상환비율(DTI) 규제 등으로 주택매입이 힘들어지자 은행에 돈이 쌓이고 있다. 하지만 은행으로 몰리고 있는 돈은 여전히 단기상품만 찾고 있어 단기부동화 현상은 전혀 개선되지 않고 있다는 지적이다.

◆은행에 얼마나 몰리나

지난달 말 기준 국민 우리 신한 하나 등 4대 시중은행의 정기예금 잔액은 276조2000억원으로 집계됐다. 9월 말 이 은행들의 정기예금 잔액이 269조3000억원이었다는 점을 감안하면 한 달간 7조원가량 증가한 것이다.

은행권 전체적으로는 최근 석 달 연속 정기예금이 급증 추세다. 한국은행에 따르면 월간 기준으로 은행권 전체의 정기예금은 지난 8월 4조원 늘어난 데 이어 9월에는 9조2000억원이나 증가했다. 이에 힘입어 은행권 전체의 자금조달은 지난 9월 말 기준 1021조원으로 1000조원을 돌파했다.

은행 관계자들은 금융위기가 진정국면에 접어들었는 데도 이처럼 은행 수신이 늘어나는 것은 경제전망이 여전히 불확실한 데다 경쟁시장이 조정국면에 접어들었기 때문이라고 설명하고 있다. 특히 증권시장은 코스피지수가 한때 1700선을 넘어섰다가 최근 1500대로 하락하면서 펀드자금이 지속적으로 이탈하고 있다. 부동산시장에서도 정부가 DTI 규제를 강화하면서 대출을 안고 집을 사기가 쉽지 않은 상황이다. 때문에 일단 은행에 돈을 맡겨놓고 향후 추세를 보자는 분위기가 역력하다.

◆단기화현상은 여전

하나은행이 지난 9월 초 내놓은 '369정기예금'은 두 달 만에 2조원 가까운 자금이 몰려들었다. 이 상품은 만기가 되기 전에 해약하더라도 높은 금리를 주는 것이 특징이다. 3개월이면 연 2.9%,6개월까지는 연 3.2%,9개월까지는 연 3.6%,1년을 채우면 예치금에 따라 연 4.3~4.5%의 이자가 지급된다. 사실상 3개월짜리 상품에 가깝다.

언제라도 자금을 찾을 수 있는 상품도 인기를 끌고 있다. 한국씨티은행의 '에이플러스(A+) 통장'은 지난 8월20일 처음 선을 보인 이후 지금까지 1조1500억원을 끌어들였다. 씨티은행 관계자는 "보통예금은 주식이나 부동산 등 투자할 대상이 나타났을 때 편리하게 출금할 수 있어 투자자들로부터 새롭게 각광받고 있다"고 말했다.

이와 관련,삼성경제연구소는 지난 5월부터 9월까지 은행 예금으로 유입된 자금이 월평균 6조6000억원이었지만 이 가운데 절반은 단기상품에 집중됐다고 분석했다. 전효찬 수석연구원은 "금융위기가 진정되는 국면에서 은행 예금으로 시중자금이 몰리는 것은 이례적인 현상"이라며 "그러나 은행에 흘러든 예금의 상당수가 단기로 운용되고 있어 시중자금의 단기부동화 현상은 개선되지 않았다"고 설명했다.

은행권에 비해 1%포인트가량 높은 금리를 지급하는 저축은행에도 적잖은 자금이 흘러들어가고 있다.

이태훈/박준동 기자 beje@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