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대 위의 연주자들이 공연 중 태연하게 옷을 갈아 입고 서로 비웃으며 떠든다. 리모컨 버튼을 누를 때마다 순식간에 오케스트라는 곡을 바꿔 연주한다. 상황극은 계속되고 객석의 폭소는 끊이지 않는다. 엄숙해야할 클래식 공연장은 '웃음바다'가 된다.

'바이올리스트의 교과서'라 불리는 이 시대 최고의 바이올린 연주가 기돈 크레머가 음악회가 아닌 클래식 쇼에 가까운 파격적인 공연을 갖는다. 10일 서울 예술의전당 콘서트 홀에서 열리는 이번 무대는 그의 여섯 번째 내한 공연으로 유머를 곁들인 '클래식 잔칫상'이다.

러시아 출신인 기돈 크레머는 파기니니 콩쿠르,차이코프스키 콩쿠르 등에서 우승을 차지해 세계적인 주목을 받았으며 레너드 번스타인,헤르베르트 폰 카라얀,주빈 메타 등 세기의 마에스트로와 함께 무대에 올랐다.

이날 공연의 제목은 '기돈 크레머 되기'이고 부제는 '클래식 음악가의 흥망성쇠'다. 영화배우 존 말코비치 속으로 들어가 그의 인생을 직접 느껴보는 인물들을 그린 영화 '존 말코비치 되기'에서 따온 듯한 제목에서 알 수 있듯이 공연장에서 기돈 크레머의 고민을 공유할 수 있다. 그는 제작 노트를 통해 "예술 세계에서 상업성이 강해지고 있는 반면 영혼의 울림과 같은 음악의 진정한 가치와 의미는 사라지고 있다"며 "이번 공연이 관객들을 배꼽 빠지게 웃기겠지만 그 뒤에는 예술의 하향 평준화에 대한 비판이 깔려 있다"고 말했다.

공연 프로그램은 모차르트,바흐,쇼스타코비치 등 전통 클래식에서부터 엔니오 모리코네,한스 짐머,존 월리암스 등 유명 영화음악 작곡가의 음악까지 다채롭게 들려준다.

이번 무대는 기돈 크레머가 창단해 이끌고 있는 체임버 오케스트라인 크레메라타 발티카와 클래식 연주 듀오 주형기-알렉세이 이구데스만과 함께한다.

지난 5월 내한공연을 했던 바이올리니스트 이구데스만과 피아니스트 주형기는 2004년부터 '악몽 같은 음악(A Little Nightmare Music)'이라는 연주회로 기존 클래식 공연을 넘어선 파격을 선보이고 있다.

한국계 영국인 피아니스트 주형기는 스트라빈스키,신시내티 국제 피아노 콩쿠르 등에서 어린 나이에 우승해 신동으로 불렸고 2002년 부시 전 미국 대통령의 초청을 받아 백악관에서 연주하기도 했다. 그는 영국의 명문 예후디 메뉴인 음악학교에서 이구데스만을 처음 만나 계속 음악 작업을 함께 해왔다. 이들은 지난해부터 기돈 크레머와 함께 '클래식 음악가의 흥망성쇠'연주회를 진행하고 있다.

김주완 기자 kjwan@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