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기 침체와 유가 상승 등에 따라 세계 자동차 시장에서도 소형차에 대한 관심이 뜨겁다. 픽업 트럭,대형 세단 등 큰 차만 고집하던 미국 시장에서도 소형차 판매 비중이 늘고 있다. 앞으로 소형화,경량화,친환경이라는 명제는 더욱 심화될 것이다. 인도 타타의 나노와 지리자동차 등 중국 업체의 소형차들이 전 세계 시장을 뒤덮을 날이 머지 않았다는 관측에도 힘이 실리고 있다.

이에 프리미엄 브랜드에서도 소형차 개발에 박차를 가해 BMW 1시리즈,아우디 A1,벤츠 A클래스,토요타 iQ 등 작고 효율적인 차들이 데뷔했거나 세상에 선보일 준비를 하고 있다.

그렇다면 한국 시장은 어떨까. 얼마 전 선보인 베르나 트랜스폼과 다음 달 데뷔를 앞두고 있는 르노삼성 SM3의 소식을 들으면서 소형차의 위상에 대해 곰곰이 생각해 봤다. 도로가 좁고 주차공간이 부족한 유럽과 일본에서 소형차가 탄탄하게 자리잡은 것과 달리 한국에서 소형차는 예전부터 관심에서 벗어나 있었다.

자동차의 대중화(모터리제이션)가 이뤄지면서 자동차가 이동 수단보다는 패밀리카로 쓰인 것이 소형차를 기피하는 하나의 이유가 될 수도 있겠다. 자동차가 성공의 척도,남들에게 보여주기 위한 과시의 수단이 된 것과도 무관치않다. 이로 인해 베스트셀링카는 소형차가 아니라 준중형 모델이 차지해 왔다. 엘란트라-아반떼를 잇는 인기차 계보가 최근에는 쏘나타 등 중형차로 올라갔다.

얼마 전 현대차의 베르나 트랜스폼이 발표됐다. 잘 알다시피 베르나는 현대의 베이직 모델이다. 엑센트의 뒤이어 등장한 소형차이지만 국내에선 참담하리만큼 외면받았다. 수출로 근근이 명맥을 이어가던 베르나가 이번에 확 바뀌었다. 베르나는 신형 모델을 통해 과감하면서도 개성있는 디자인으로 탈바꿈했고 범퍼를 20㎜ 늘려 차체가 커보이게 변화했다.

물론 소형차에 대한 폭발적인 인기가 없던 것이 과연 소비자들이 무조건적으로 외면했기 때문일지 생각해봐야 한다. 제대로 된 소형차가 나왔다면 그토록 큰 차들만 선호하는 결과가 나왔을까? 이전 베르나는 누가 보아도 밋밋한 디자인이었다. 같은 플랫폼 내에서 세계 어느 메이커보다도 넓은 실내를 만들어 내는 현대차답게 내부 공간은 비좁지가 않았다. 하지만 사랑받을 수 없는 외모에 준중형차와 크게 차이 나지 않는 가격,부족한 옵션 등으로 '이왕이면' 하면서 준중형차 아반떼에 계약 도장을 찍은 소비자가 적지 않았다.

차체가 점점 커지는 것은 거스르기 힘든 트렌드다. 소형차 노하우가 많은 폭스바겐이 최근 내놓은 폴로는 예전과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커졌다. 르노삼성이 야심차게 준비하고 있는 SM3 같은 경우도 거의 로체와 비슷한 크기다. 결국 소비자가 원하는 크기에 맞춰가면서 연비와 성능을 함께 고려한 모델이 소형차 경쟁력의 핵심이다.

베르나 트랜스폼과 뉴 SM3는 이 같은 변화에 부응하는 시발점이기를 기대한다. 한발 더 나아가 개성 넘치고 다양한 소형차가 나오는 계기가 됐으면 한다. 이것이 치열한 경쟁 구도에서 살아 남을 수 있는 길이라고 생각한다. 소비자 인식도 이제는 변화해야 한다. 좋은 작은 차에 관심을 갖는 소비자가 많아지면 소형차 경쟁력은 그만큼 더 높아질 게 분명하다.

이수진 모터매거진 편집장 kino2002@motor-mag.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