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65일 내내 화려한 네온사인이 꺼지지 않기로 유명한 세계 최고의 카지노 도시 라스베이거스.이곳의 중심거리이자 세계 최고급 카지노호텔 30여곳이 밀집한 '더 스트립(The Strip)'엔 한 해 중 최대 대목인 연말연초 휴가 시즌을 맞이한 요즘 '방값 할인' 광고가 넘쳐나고 있다. 내년 1월 첫째주의 숙박예약 요금은 지난해 같은 기간보다 35%나 떨어졌다. 연말에 95~100%에 달했던 호텔 객실점유율도 80%대로 내려갔다. 예년과 같이 카지노 관광객이 밀려 들어 웃돈을 주고서라도 방을 얻으려 하는 모습은 찾아보기 힘들다.

미국 네바다주 사막 한가운데 건설된 도시로 1931년 카지노가 합법화되면서 대공황 와중에도 고성장을 구가했던 라스베이거스도 글로벌 금융위기의 한파 앞에선 맥을 못추며 무릎을 꿇고 있다.

라스베이거스 관광청에 따르면 지난 10월 라스베이거스의 카지노 매출은 4억7500만달러로 전년 동기보다 25.8% 급감했다. 같은 기간 방문객 수도 304만명으로 10.2% 줄었다. 하루 평균 방값도 115.68달러로 전년 동기 대비 14.3% 하락했다. 설상가상으로 라스베이거스의 지난달 실업률은 7.9%로 1992년 7월 이후 16년 만에 최고치를 기록했으며,같은 기간 동안 1000여명의 근로자들이 라스베이거스 카지노에서 일자리를 잃었다.

네바다주 정부의 직업훈련 및 고용증진팀의 수석 이코노미스트인 빌 앤더슨은 "라스베이거스 카지노업계의 침체 원인은 지난해 말부터 불거진 서브프라임 모기지(비우량 주택담보대출) 부실 사태로 시작된 미국 경기불안으로 소비자들이 지갑을 닫으며 레저 비용부터 제일 먼저 줄였기 때문"이라며 "내년 말까지도 불황에서 쉽게 회복되지 못할 것으로 우려되고 있다"고 말했다.

더 스트립의 명물로 객실 수만 2885개에 달하는 초대형 호텔인 트레저 아일랜드는 최근 라스베이거스 카지노 업계의 이 같은 불황을 단적으로 보여주는 상징이다. 매일 밤 호텔 앞 인공호수에서 바다의 요정 세이렌과 해적 간의 해상전투를 생생하게 재현하는 '해적 쇼(Pirate Show)'로 명성이 자자한 트레저 아일랜드는 호텔의 주인인 세계 2위 카지노기업 MGM미라지가 실적 부진에 못 이겨 급매물로 내놓으며 지난 17일 7억7500만달러에 팔렸다. 당초 예상돼 왔던 호텔 가치의 절반에도 못 미치는 수준이다. 이에 앞서 지난 7월엔 라스베이거스에서 10여개 카지노 호텔을 운영하며 터줏대감 노릇을 해 오던 트로피카나 엔터테인먼트가 파산하면서 라스베이거스를 뒤숭숭하게 만들었다.

수백억달러를 주무르며 세계 시장을 호령했던 미국 카지노 재벌기업들도 금융위기의 타격에 휘청이고 있다. 미 최대 카지노업체 라스베이거스 샌즈는 지난 3분기 3220만달러의 순손실을 냈다. 마카오,싱가포르 등에 공격적으로 투자하면서 조달한 자금 관련 부채가 눈덩이처럼 불어나면서 유동성 위기에 빠진 게 실적 악화의 가장 큰 원인이었다.

2006년 사모펀드인 텍사스퍼시픽그룹(TPG)과 블랙스톤이 공동인수했던 해러스엔터테인먼트는 지난 3분기 매출이 전년 동기보다 6.8% 감소해 26억달러에 그쳤고,1억3000만달러의 순손실로 적자로 돌아섰다. MGM미라지는 3분기 순이익이 전년 동기보다 67% 급감한 데 이어,올 들어 주가도 약 90% 떨어졌다. 게다가 카지노 업계의 거물로 군림했던 테런스 라니 MGM미라지 회장이 학력 위조가 드러나면서 최고경영자(CEO)직에서 사임하는 등 악재가 겹쳤다.

카지노 억만장자들도 업계 불황으로 인해 큰 손해를 봤다. 라스베이거스 샌즈의 대주주인 셸던 애덜슨 회장 겸 최고경영자(CEO)는 최근 보유주식 가치가 급락하면서 지난해 10월부터 올 11월까지 총 300억달러의 손실을 입었다.

애덜슨은 지난달 11일 유동성 확충을 위해 21억달러의 신주 발행을 결정하고,우선주와 주식워런트 매입을 위해 자신의 자금 5억2500만달러를 투입하겠다고 발표했다. 증자가 완료되면 애덜슨의 지분은 68.9%에서 51.3%로 줄어들게 된다. 애덜슨은 이에 앞서 지난 10월 회사의 유동성 확충을 위해 4억7500만달러의 사재를 투입하기도 했다.

MGM미라지의 대주주인 '기업 사냥꾼' 커크 커코리언도 올 들어 68억달러를 날렸고,벨라지오 윈호텔 등 라스베이거스의 유명 호텔들을 다수 갖고 있는 '라스베이거스의 황제' 스티브 윈 윈리조트 CEO도 수십억달러의 손실을 입었다.

하지만 이 같은 카지노업계의 침체에도 불구하고 일본과 싱가포르 등 아시아 국가에선 카지노 산업 육성 움직임은 꾸준히 이어지고 있다. 카지노 산업을 통해 국부 유출을 방지하고 막대한 세금수입을 손쉽게 얻을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하기 때문이다.

일본은 올해 자민당에서 카지노 합법화 법안을 마련했으며 내년 의회 통과를 위해 적극적으로 나서고 있다. 싱가포르 정부는 총 60억달러를 투자해 2009년과 2011년 개장을 목표로 2개의 대형 카지노를 건설 중이며,카지노가 오픈하면 연간 22억달러의 신규 수익이 창출될 수 있을 것으로 전망되고 있다.

이미아 기자 mia2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