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소득자 증세 유보 검토
시장친화적 시그널 강화

버락 오마마 차기 미국 대통령 당선인의 '색깔'이 조금씩 달라지고 있다. 대선 과정에서 목소리를 높였던 보호무역주의 경향의 공정무역과 '탐욕스런' 월가에 대한 강도 높은 개혁,5% 부자에 대한 세금 증세 등의 공약이 현실성있게 바뀌는 모습이다.

대공황 이후 최악이라는 경제위기 돌파를 위해 명분보다 실리를 택했다는 평가다. 집권 초기부터 무리한 개혁 드라이브를 걸기보다는 안정에 초점을 맞추고,기업과 시장 친화적인 정책에 무게중심을 두겠다는 것이다. 뉴욕 증시의 다우지수가 21,24일 이틀 동안 사상 최대폭(891.10포인트)으로 뛰는 등 글로벌 증시가 강세를 보인 것은 이 같은 오바마의 '변신'을 세계 각국이 환영하고 있음을 의미한다.

오바마 당선인이 24일 오전 11시(현지시간) 시카고에서 발표한 차기 정부 경제팀의 면면과 기자회견 내용은 당선 이후 달라진 현실주의적 인식을 잘 드러낸다. 그는 백악관과 행정부에서 '신 뉴딜' 경제정책을 총괄할 컨트롤 타워에 실전 경험이 풍부한 인물을 전진 배치했다. 성장률 둔화,실업률 급등 등 경제상황이 악화일로여서 저돌적인 개혁 성향의 신예를 앉혀 워밍업할 시간조차 아깝다고 판단한 것이다.

대통령 직속 국가경제위원회(NEC) 위원장으로 내정한 로렌스 서머스 전 재무장관은 빌 클린턴 전 대통령 시절 경제 호황기를 주도한 경력의 소유자다. 오바마 당선인은 서머스에 대해 "재무장관 재직 당시 국제 금융위기를 돌파했으며,2000만개 이상의 일자리를 만드는 등 미국의 최장기 호황을 주도한 핵심 인물"이라고 소개했다.

서머스는 또한 자유무역 옹호론자이기도 하다. 이는 자동차 무역 불균형 시정 등 공정무역을 강조하고 자유무역협정(FTA)에 반대해온 당선인의 기존 시각이 일부 바뀌고 있음을 시사한다. 앞서 대통령 비서실장으로 내정한 램 이매뉴얼도 클린턴 정부 당시 민주당 의원들을 설득해 북.미 자유무역협정(NAFTA) 체결을 유도한 주인공이다.

초대 재무장관에 내정한 티모시 가이트너 뉴욕연방은행 총재도 시장 친화적 인물로 평가된다. 오바마 당선인은 가이트너 총재가 "금융위기를 누구보다 잘 이해하고,기업과 시장의 신뢰와 존경을 받고 있다"는 점을 발탁 배경으로 꼽았다. 가이트너는 월가와 기업에 무작정 규제와 감독의 칼을 휘두르지 않겠다는 게 기본 철학이다.

오바마 당선인은 대선공약인 부자들에 대한 증세를 유보하는 방안도 내비쳤다. 그는 이날 "중산층에 감세 혜택이 돌아가도록 하겠다"고 밝혔으나 연간 25만달러 이상의 고소득자들을 겨냥한 감세 혜택 폐기 여부와 관련해서는 극도로 말을 아꼈다. 이 모두 '오바마호(號)'가 예상과 다른 노선을 걸을 수 있음을 예고하는 징표로 받아들여지고 있다.

워싱턴=김홍열 특파원 comeon@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