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적 부진ㆍ환율 불안 … "주당 26달러 가치없다" 판단

삼성전자가 세계 1위 플래시 메모리카드 업체인 미국 샌디스크사 인수 제안을 철회했다.

인수 가격을 놓고 이견을 좁히지 못한 것이 철회의 가장 큰 원인이다. 반도체 시황 악화와 샌디스크의 실적 부진,원·달러 환율 폭등에 따른 인수가격 부담 등도 인수협상 불발의 배경요인으로 작용했다.


◆샌디스크 인수협상 중단

삼성전자는 22일 오전 엘리 하라리 샌디스크 회장과 어윈 페더만 이사회 부의장에게 보낸 서한을 통해 "주식 2억2500만주를 주당 26달러(총 58억5000만 달러)에 100% 현금으로 인수하겠다고 제안했지만 샌디스크 이사회의 거부로 협상에 진전이 없어 인수 제안을 철회한다"고 밝혔다.

이어 "샌디스크 사업의 불확실성이 증가하고 가치가 하락하고 있다는 점에 적절하게 대응하는 것이 삼성전자 주주들에 대한 의무라고 판단했다"고 덧붙였다.

삼성전자 관계자는 "샌디스크 인수 제안을 철회하더라도 새로운 사업기회 창출과 성장동력 발굴을 위해 상시적으로 국내외 업체와의 제휴,합작 등 다양한 가능성에 대해 검토할 계획"이라고 설명했다.

◆인수가격 입장차 못좁혀

삼성전자와 샌디스크는 인수 가격을 놓고 입장차를 좁히지 못했다. 지난 9월 삼성이 공개한 인수가격은 당시 샌디스크의 주가에 60%의 프리미엄을 얹은 수준이었다. 하지만 샌디스크는 "회사의 내재가치가 반영되지 않은 가격"이라며 삼성 측 제안을 거절했다.

MP3플레이어,디지털 카메라 등 IT기기 소비의 급감으로 샌디스크의 주력 상품인 메모리 카드 산업이 휘청거리고 있는 것도 삼성전자가 마음을 돌린 원인 중 하나였다. 샌디스크는 지난 3분기 2억5000만달러의 영업 적자를 내는 등 두 분기 연속 적자행진을 하고 있다.

원·달러 환율 급등도 부담감을 키웠다. 삼성전자가 샌디스크 인수를 비공개로 제안한 4월 이후 원·달러 환율은 1998년 이후 최고치를 경신할 만큼 치솟았다.

샌디스크가 제휴사인 도시바와 함께 일본에서 가동 중인 반도체 생산시설의 일부를 도시바에 매각하기로 결정한 것도 삼성전자를 자극했다는 분석이다. 도시바는 낸드플래시 시장을 놓고 삼성전자와 경쟁을 벌이고 있는 라이벌 업체 중 하나다.

◆주당 26달러 이하면 재고 가능성도

업계 일각에서는 삼성전자가 인수를 완전히 포기한 것은 아니라는 분석도 나오고 있다.

주당 26달러에 샌디스크를 인수한다는 계획을 철회했을 뿐 그 이하의 적정한 가격이라면 재고해 볼 수 있다는 게 삼성전자의 의중이라는 시각이다.

샌디스크 주가는 당초 삼성전자가 인수가격으로 제시한 26달러의 절반을 맴도는 14.76달러(21일 미국 시장 종가 기준)까지 떨어졌다.

서한에 사용된 단어가 인수제의 자체를 없던 일로 하겠다는 뜻의 '포기'(give up)가 아니라 기존 제안을 무효로 하겠다는 '철회'(withdraw)라는 점도 협상 재개 가능성을 점치는 전문가들의 관측에 힘을 더하고 있다.

업계 관계자는 "샌디스크 주가의 추가 하락을 우려한 주주들이 이사회를 압박하도록 하기 위해 삼성전자가 '벼랑 끝 전술'을 썼을 수도 있다"며 "삼성의 초강수가 샌디스크 이사회의 마음을 움직일 수 있을지는 미지수"라고 말했다.

송형석 기자 click@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