커지는 인플레 압박..美 경기침체 공포 부활

국제유가가 6일(현지시간) 유례 없는 폭등세를 보이면서 세계 경제에 암운을 드리우고 있다.

그렇지 않아도 인플레이션 압박이 커지면서 성장 둔화가 예상되는 세계 경제에 이날 유가의 폭등세는 거의 '쇼크' 수준이다.

특히 유가의 급등은 주택경기 침체와 여전히 지속되는 신용위기 속에 소비심리도 위축시키면서 경기침체 우려가 가시지 않고 있는 미국 경제의 걱정을 더욱 깊게 만들고 있다.

마켓워치 등 일부 미 언론들이 현재의 상황을 '석유위기'로 표현할 정도로 유가 급등이 경제에 미치는 심리적 충격은 크게 다가오고 있다.

◇ 커지는 인플레 압력..美 경기침체 공포 부활

이날 배럴당 139달러를 넘기도 한 미 서부 텍사스산 원유(WTI)의 가격 수준이 연초에 100달러를 넘었던 점을 감안하면 불과 5개월여만에 40% 가까이 오른 것이다.

80년대초 오일쇼크 때의 인플레이션을 감안한 유가인 배럴당 103달러 수준은 이미 큰 폭으로 넘어선지 오래다.

이날 하루만에 배럴당 10달러 넘게 폭등한 것은 전에는 상상할 수도 없는 수준이어서 한동안 잠잠했던 미국의 경기침체 공포를 다시 살아나게 하고 있다.

또 물가는 오르고 경제성장은 정체되는 스태그플레이션 우려도 커지고 있다.

이날 뉴욕증시의 폭락도 이런 우려를 반영하고 있다.

푸르덴셜 국제투자자문의 존 프라빈 수석 투자전략가는 "유가가 어디까지 갈 것인지 우려가 크다"면서 "스태그플레이션이 경제성장과 소비자에게 미치는 부정적인 영향과 함께 최대의 공포가 되고 있다"고 로이터통신에 말했다.

유가 급등에 따른 인플레 압력은 이미 미국과 유럽의 통화정책 책임자들의 최대 걱정 거리다.

벤 버냉키 미 연방준비제도이사회(FRB) 의장이 얼마전 인플레 우려를 경고했고, 장-클로드 트리셰 유럽중앙은행(ECB) 총재도 인플레 우려로 금리 인상 가능성을 언급하기도 했다.

미국의 물가상승 압박은 경제지표에서도 확인된다.

미 노동부가 20일 발표한 4월 생산자물가지수(PPI)는 0.2% 상승했고 변동성이 심한 에너지와 식품을 제외한 근원 PPI는 0.4% 높아져 월가 전문가들의 예상치를 웃돌았다.

근원 PPI는 지난해에 비해서는 3% 상승, 1991년 이후 연간 기준 최대 상승률을 기록하기도 했다.

4월 물가지수는 유가가 상대적으로 덜 올랐던 상황에서 나온 것이어서 5월 이후 유가가 급등세를 보인 점을 감안하면 물가 상승 압력이 미 경제에 큰 부담이 될 전망이다.

◇ 소비 위축 현실화

고유가에 따른 물가상승은 소비자들의 가계사정을 압박해 소비를 얼어붙게 만들고 있다.

미국의 경우 갤런당 평균 4달러에 달한 휘발유 판매가는 소비심리도 최악의 수준으로 떨어뜨려 소비심리 면에서는 이미 경기침체 국면을 맞고 있다.

조지 부시 행정부가 1천500억달러에 달하는 세금 환급을 통해 경기부양에 나섰지만 주택담보대출이나 신용카드 부채를 갚기에 바쁜 미국인들을 소비로 이끌기에는 역부족인 상황이다.

지난달 27일 발표된 미 민간경제연구기관인 콘퍼런스보드의 5월 소비자신뢰지수는 16년만에 최저치로 떨어졌고 미시간대의 소비심리 지수도 28년만에 최저치로 추락했다.

콘퍼런스보드의 5월 소비자신뢰지수는 57.2를 기록, 1992년 10월 이후 최저치로 떨어졌고 미시간대의 5월 소비자신뢰지수도 59.5로 1980년 이후 최악을 기록했다.

미국의 1분기 경제성장률은 0.9%를 기록, 수치상으로는 경기침체양상을 보이지 않았고 이 덕분에 미국의 경기침체 우려가 약화되기도 했다.

그러나 이같이 얼어붙은 소비심리는 미국인들의 체감경기는 이미 침체에 들어섰음을 보여주고 있다.

리먼브러더스의 이코노미스트인 이던 해리스는 "급등하는 유가가 소비심리를 깊은 경기침체 수준으로 빠뜨리고 있다"고 말했다고 AFP 통신은 전했다.

실제로 지난달 미국의 자동차 판매는 유류비가 많이 들어가는 픽업트럭과 SUV의 판매가 급감하면서 10.7%나 감소했다.

이에따라 제너럴모터스(GM)과 포드 등은 대형 차량 생산을 줄이는 구조조정에 나서기로 했다.

미 상무부가 지난달 13일 발표한 4월 소매판매도 0.2% 감소하는 등 최근 5개월 중 3차례 감소세를 보였다.

◇ 고용 감소.기업실적 악화 악순환

미 경제를 뒷받침하는 소비의 침체는 기업실적 및 고용사정 악화의 악순환으로 이어진다는 점에서 걱정을 키우고 있다.

미 노동부가 이날 발표한 지난 5월 실업률은 5.5%로 전월의 5%보다 0.5%포인트 상승했다.

이는 지난 2004년 10월 이후 3년6개월 동안 가장 높은 실업률이자, 월간 실업률로는 지난 22년간 최고치다.

미국의 고용시장 악화가 현실화되고 있는 것이다.

고유가로 인한 기업실적 악화 및 이로 인한 고용 감소는 항공사 및 자동차업계에서 그대로 확인되고 있다.

델타, 유나이티드, 컨티넨탈 항공 등 고유가로 몸살을 앓고 있는 미 항공사들은 최근 잇따라 감원 및 감편 계획 등을 내놓고 있다.

미 항공사들의 감원 규모는 올해 들어 2만2천명에 달한다는 추정도 나오고 있다.

GM과 포드 등 미 자동차사들도 명예퇴직 등을 통한 구조조정에 들어갔다.

조지 부시 미 대통령은 이날 5월 실업률이 급등한 것과 관련, 경제성장 둔화의 신호라면서 의회에 경제회복을 촉진하기 위해 한시적인 세금감면법안을 영구화해야 한다고 촉구했다.

에드 길레스피 백악관 공보담당 고문은 부시 대통령이 새로운 경기부양책을 검토하고 있다고 밝혔다.

미국 경제의 걱정이 그만큼 커지고 있다는 뜻이다.

(뉴욕연합뉴스) 김현준 특파원 june@yn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