몇 번을 둘러봐도 청계광장은 집회나 시위하기에 딱 좋은 곳이다.

서울 4대문 안에 이만한 곳이 없다는 생각이 갈 때마다 든다.

2005년 10월1일 첫선을 보인 청계광장은 2026㎡ 규모로 그야말로 아담한 사이즈다.

3000~4000명만 모여도 1만명 이상이 온 것 같은 꽉찬 느낌을 준다.

사진기자들이 가장 선호하는 집회장소라고 할 만하다.

청계광장은 좀더 자세히 보면 좌 청룡,우 백호에 배산임수형이다.

광장 왼쪽과 오른쪽 뒤쪽은 20층 이상 높이의 빌딩으로 둘러쳐져 있고 광장 앞에는 청계천이 시원한 물줄기를 뿜으며 사시사철 흐른다.

모두가 인공 건축물이긴 하지만 명당의 모습 그대로다.

포근한 느낌과 끝내주는 음향효과는 보너스다.

이런 청계광장에 촛불과 노래가 더해지면 금상첨화가 따로 없다.

국민 먹거리인 쇠고기가 집회주제였으니 촛불문화제는 여건상 성공할 수밖에 없었다.

광우병에 대한 지식유무를 불문하고,일반 가족과 중고생,직장인들이 초기 10여일간 촛불문화제에 몰려온 것도 주제와 장소의 절묘한 조합덕분 아니었을까 싶다.

현실비판적 집회에 연예오락이 잘 접목된 '데모테인먼트'의 전형을 보였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하지만 청계광장 집회의 이 같은 긍정적 이미지는 지난 24일부터 이도저도 아닌 잡탕식 집회로 변질되기 시작했다는 게 집회 취재중 가진 느낌이다.

문화제에 민주노총과 전교조,진보신당,민노당 등 여러 정치세력들이 무임승차하면서 '쇠고기와 촛불'은 뒤로 밀렸다.

대신 '미친 민영화''독재타도''대통령 하야'라는 정치구호와 '미치광이 끌어내자'라는 듣기에도 민망한 인터넷 댓글식 한풀이 욕설이 청계광장을 채워갔다.

이명박 대통령에 대한 호불호를 떠나 국가를 대표하는 대통령을 미친X,미치광이라며 저주를 퍼붓는 말이 예삿말처럼 쏟아졌다.

26일 오후 8시40분께 연단에 오른 한 연사는 "국민을 위해 법을 만들지 않으면 우리가 법을 만들면 된다"며 선동했다.

'꾼'들도 단상에 올랐다.

'이명박 이×× 죽여서 껍X기를 벗기자'는 등 아이들은 물론이고 어른들도 귀를 막을 정도의 막말이 튀었다.

한때 인구에 회자했던 '저주의굿판'에 다름아니었다.

현장 구석구석에서 '옳소'라는 말이 들리긴 했지만 집회 참가자들 중 상당수가 발언수준이 한심스럽고 창피스러운 듯 고개를 숙였다.

24일과 25일 새벽 사이 집회 행동파들이 도로점거 시위를 하면서 문화제는 제 모습을 잃어갔고 26일부터 시민들의 참여열기도 급랭했다.

옛날 시위진압 사진을 마치 현장에서 벌어진 사진인 양 인터넷에 퍼올리는 현실과 중ㆍ고교를 뒤흔든 '5ㆍ17 휴교'메시지는 한 재수생이 만든 것이라는 사실에 촛불은 꺼져가고 있다.

촛불문화제는 쇠고기 협상을 안일하게 한 이명박 정부의 종아리를 준엄하게 내려친 회초리 역할을 충분히 했다.

촛불문화제가 초기의 좋은 이미지로 남을 수 있도록 이제 과유불급의 미를 발휘해 보면 어떨까.

'촛불문화제가 이런식으로 더 지속되면 정말 이상해질 것 같다'는 느낌을 필자만 받은 것일까.

고기완 사회부 차장 dadad@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