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법 "방향과 관계없이 모두 횡단보도 보행자로 해석 못해"

남북으로 설치된 횡단보도를 동서 방향으로 걷던 보행자가 차에 치인 경우 도로를 횡단할 의사가 있었던 게 아니므로 `횡단보도 사고'로 처벌할 수 없다는 판결이 나왔다.

대법원 3부(주심 이홍훈 대법관)는 횡단보도를 걸어가던 보행자를 들이받고 한쪽 다리에 골절 등 전치 8주의 상해를 입힌 혐의(교통사고처리특례법 위반)로 기소된 조모(37)씨의 상고심에서 공소를 기각한 원심을 확정했다고 18일 밝혔다.

소형화물차 운전자인 조씨는 지난해 3월24일 오후 7시께 서울 서대문구 창천동의 주택가 이면도로에서 차를 몰다가 횡단보도를 걷던 A씨를 미처 발견하지 못해 들이받았다.

당시 횡단보도는 창서초등학교에서 신촌로에 이르는 남북 방향으로 설치된 반면 피해자는 현대백화점에서 원불교에 이르는 동서 방향으로 걷고 있었다.

조씨는 횡단보도에서 보행자 보호 의무를 위반해 운전한 혐의로 기소됐다.

그러나 1ㆍ2심은 "피해자가 상해를 입은 사실은 인정되지만 횡단보도를 따라 횡단한 게 아니므로 횡단보도 보행자는 아니다.

관련법이 보호하는 보행자는 모든 보행자를 의미하는 게 아니라 횡단보도를 그 용법에 따라 `횡단'하는 보행자"라며 "어느 방향으로 움직였는가에 관계없이 이 사건 피해자까지 보행자로 해석하는 건 법률의 의미를 근거없이 확장하는 것으로 죄형법정주의 위반의 소지가 크다"고 판단했다.

아울러 1ㆍ2심은 특례법상 사고 차량이 자동차종합보험에 가입한 경우 기소(공소 제기)할 수 없는 점을 들어 기소는 무효라며 공소 기각(공소를 부적법하다고 인정해 소송을 종결하는 것) 판결을 내렸다.

대법원도 "피해자가 남북 방향으로 설치된 횡단보도를 동쪽에서 서쪽으로 지나가던 중 피고인의 차에 의해 충격을 당한 경우 도로를 횡단할 의사로 횡단보도를 통행하고 있었다고 할 수 없으므로 피고인에게 보행자 보호 의무가 없다는 이유로 공소를 기각한 원심은 정당하다"고 밝혔다.

재판부는 "도로교통법상 `보행자가 횡단보도를 통행하고 있는 때'는 사람이 횡단보도에 있는 모든 경우를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도로를 횡단할 의사로 횡단보도를 통행하고 있는 경우에 한한다"고 덧붙였다.

(서울연합뉴스) 임주영 기자 zoo@yn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