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보1호 숭례문 잿더미] 작동 멈춘 '참여정부 시스템'
국보1호 숭례문이 화재로 무너져 내린 지난 10일 오후 8시46분부터 11일 오전 2시까지 참여정부가 강조해온 시스템은 작동되지 않았다.

문화재 보존을 강조해온 문화재청과 소방방재청은 진화 방식을 놓고 티격태격했다.

청와대와 국무총리실는 보고만 받았을 뿐 통합 컨트롤타워 역할을 제대로 해내지 못했다.

숭례문 보존에 책임이 있는 서울시 중구청장 소방방재청장 문화재청장 문화관광부 장관 중 어느 누구도 현장을 지휘하지 않았다.

이 때문에 숭례문 화재사건은 방화 여부와 관계없이 안이한 위기관리시스템이 낳은 예견된 인재(人災)라는 지적이다.

가장 큰 문제는 문화재청과 소방방재청이 문화재 화재시 적용할 매뉴얼이 없었다는 점이다.

강원도 낙산사 화재 이후 매뉴얼을 만들기로 했으나 1년이 넘게 감감무소식이었고 이 때문에 현장에서는 양측이 우왕좌왕했다.

내부 화재 진화를 위해 지붕이나 측면을 뚫고 들어 갔어야 했지만 양측은 문화재 보존에만 매달렸고 이로 인해 숭례문 전체를 태우는 우를 범했다.

위기관리시스템 부재에 따른 소탐대실의 전형이었다.목격자 신고에 경찰이 보다 적극적으로 대응했다면 방화범을 체포할 수도 있었다.

목격자 이모씨에 따르면 경찰에 신고했으나 제대로 대응하지 않았고 그 사이 방화범으로 추정되는 사람이 남산쪽으로 도주했다는 것이다.

관할 구청의 관리 실태가 당장 도마위에 올랐다.숭례문은 문화재보호법상 관할 기초자치단체인 서울 중구청이 관리단체로 지정돼 있다.

그러나 중구청 공원녹지과는 오전 10시부터 오후 8시까지를 현장 근무시간으로 정하고 그 외의 시간은 무인경비업체에 보안업무를 맡겨 놓은 채 아예 숭례문을 비워 놓은 것으로 나타났다.

사고가 난 휴일의 경우 현장 근무자가 1명에 불과했고 평일에도 근무자가 3명이며 그나마 오후 6시 이후에는 1명만 남아서 근무하는 것으로 조사됐다.

경찰은 "어제 화재가 휴일 저녁 8시 이후에 발생해 당시 근무자는 한 명도 없었다.

어제 근무자는 규정대로 저녁 8시까지만 근무한 뒤 돌아갔다고 진술했다"고 전했다.

1999년 개방 이후 누구나 쉽게 숭례문에 접근할 수 있게 됐는데도 출동에 시간이 걸리는 무인경비시스템에만 의존했다는 점이 사고 예방과 대처 능력을 떨어뜨렸다는 지적이다.

경찰에 따르면 숭례문 관리사무소에서 설치한 CCTV 4대 중 1대는 후문을 향해 있고 다른 1대는 숭례문 안쪽을 향하고 있으며 나머지 2대는 숭례문 정면을 바라보고 있어 방화 용의자가 이용했을 것으로 추정되는 양쪽 계단이나 불이 붙기 쉬운 목재 누각은 사실상 감시의 사각지대로 방치돼 온 것으로 밝혀졌다.

이명박 대통령 당선인은 이날 현장에서 상황 보고를 받으면서 "바닥에서 천장까지 굉장히 높은데 어떻게 사람이 올라가 불을 붙였느냐"는 말을 반복하며 믿을 수 없다는 표정을 지었다.

이 당선인은 도면상 숭례문 2층의 바닥과 천장 사이를 가리키면서 "밑(바닥)에는 불이 없는데 위에는 불이 붙었다.높이가 3m가 넘는데 사람이 올라가 어떻게 불을 붙였느냐"며 관리책임을 묻기도 했다.

이 당선인은 "CCTV는 찍혀있느냐"고 물었지만 현장에 나온 경찰 관계자로부터 "4개가 켜져 있는데,(용의자를) 발견하지 못했다"는 답변만 들었다.

성선화 기자 doo@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