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기도 평택항은 20여 년 전만 해도 고기잡이 어선들이나 오가는 '시골 포구'에 지나지 않았다.아래로는 '수출 한국'의 관문인 부산항이 버티고 있는 데다 위로는 인천항이 중국 동남아시아 등과의 교역 관문을 맡고 있었기 때문이다.평택항은 1986년 국제 무역항으로 개항하며 '샌드위치 신세 탈출'을 도모했지만 선석 부족으로 인천항에서 떠밀려 온 곡물과 석유 제품 등을 실어 나르는 데 만족해야 했다.

보다 못한 경기도와 평택시는 1990년대 들어 평택항을 '해운의 꽃'인 컨테이너 물량을 처리하는 국제 상업항으로 변신시키는 작업에 들어갔고 2000년 중소 해운사인 장금상선의 500TEU(1TEU는 20피트 컨테이너 1대)짜리 '미니 컨테이너선'을 유치하는 데 성공했다.

그리고 8년 뒤인 25일.평택항은 마침내 글로벌 컨테이너 선사들의 메인 노선인 아시아~미주 항로를 운항하는 4000TEU급 '한진-샌프란시스코호'를 손님으로 맞아들였다.

이날 평택항에서 열린 기념 행사에 참석한 강무현 해양수산부 장관은 "한진해운의 미주 노선 취항은 평택항이 한·중 직교역만 하던 '지역항'에서 명실상부한 '국제항'으로 발돋움하게 됐다는 의미"라고 평가했다.

실제 경기도와 평택시는 현재 평택항을 '황해권 대표 항만'으로 키우기 위해 대대적인 개발에 들어간 상태다.현재 22개에 불과한 선석을 2011년까지 58개로 대폭 늘리기로 했으며 4922억원을 투입해 오는 2015년까지 262만㎡에 달하는 항만 배후종합 물류단지도 개발하기로 했다.특히 한진해운 등 민간 터미널 사업자를 끌어들여 현재 3개에 불과한 컨테이너 선석을 2011년까지 9개로 확대키로 했다.이렇게 되면 평택항의 컨테이너 처리 물량은 지난해 32만8966TEU에서 2011년 100만TEU를 훌쩍 넘어서게 된다.

인천항의 지난해 컨테이너 처리 물량이 165만TEU였던 점을 감안하면 아직 갈 길이 멀지만 추가 개발 여력이 풍부한 만큼 중·장기적으로는 인천항을 누르고 황해권 대표 항만이 될 수 있다는 게 경기도와 평택시의 자신감이다.

행사장에서 만난 김문수 경기도지사는 그 이유로 '천혜의 입지 조건'을 꼽았다.인구와 공장이 밀집한 수도권을 배후로 둔 데다 '세계의 공장'인 중국과 가장 가까운 항구인 만큼 손쉽게 수출입 물량을 확보할 수 있다는 것.실제 평택항 인근에는 208만평 규모의 포승 공단을 비롯 삼성전자 탕정공장,쌍용자동차 평택공장,현대자동차 아산공장 등이 포진해 있다.별도의 준설작업 없이 6500TEU급 대형 선박이 접안할 수 있을 정도로 깊은 수심(14m)도 평택항의 장점이다.

김 지사는 "'늙은 항'인 인천항은 추가적인 선석 개발이 쉽지 않은 상태이지만 '젊은 항'인 평택항은 아직 주변이 개발되지 않은 덕분에 마음껏 관련 시설물을 지을 수 있다"며 "특히 작년 말 당진~평택 일대가 '황해경제자유구역'으로 지정된 만큼 상당한 수출입 물량이 추가될 것"이라고 말했다.송명호 평택시장은 "중국 동부 해안의 공업 지대에서 생산한 수출 제품을 소형 선박을 이용해 평택항까지 끌어온 뒤 대형 컨테이너선으로 미주,유럽으로 실어 나르는 사업이 유망할 것"이라며 "인천공항의 '동북아 환승 허브' 전략과 비슷한 개념"이라고 설명했다.

그러나 국내 항만에 대한 중복 투자를 우려하는 목소리도 높다.평택항뿐만 아니라 부산신항과 광양항,군산항 등도 저마다 선석 확대 계획을 발표했기 때문이다.해운업계 관계자는 "중국이 푸둥항을 대폭 키운 탓에 부산항마저 경쟁력을 잃어가는 상황에서 군소 항만을 무분별하게 개발하는 건 비효율"이라며 "평택항 역시 아직 대형 컨테이너선이 들어설 만큼 물동량이 확보되지 않은 탓에 지금 기항하면 적자를 볼 수밖에 없는 구조"라고 말했다.

평택=오상헌/김미희 기자 ohyeah@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