美, 7년만에 이스라엘-팔레스타인 중재 나서

조지 부시 미국 대통령이 27일 메릴랜드주 애나폴리스에서 중동평화회의를 개최하고 세계에서 가장 어려운 외교문제라는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 분쟁 해결 중재에 나서 성공여부가 주목된다.

지난 2001년 미국 대통령이 된 뒤 대부분 임기를 `테러와의 전쟁'과 씨름하며 보내왔지만 별다른 외교적 성과를 거두지 못한 부시 대통령으로선 팔레스타인 분쟁의 해결 실마리를 찾을 경우 임기 중 `외교 실책'을 상쇄할 수도 있을 것으로 평가되고 있다.

지미 카터 전 대통령의 경우 지난 1978년 이스라엘과 이집트 간 캠프데이비드 평화협정을 성공적으로 중재함으로써 외교적 업적을 남겼고, 아버지 부시 전 대통령도 지난 1991년 마드리드 협상을 통해 팔레스타인 자치정부가 탄생하는 데 기여했다.

부시 대통령의 중동평화 중재는 지난 2001년 빌 클린턴 당시 대통령의 시도 이후 7년 만에 이뤄지는 데다가 미국의 중동정책에 근본적인 변화를 가져올 수 있다는 점에서 관심을 모으고 있다.

미국 정부는 부시 대통령이 대통령직에서 물러나는 2009년 1월까지 현재의 팔레스타인 자치정부를 명실상부한 주권국가로 만들 수 있도록 핵심쟁점을 해결한다는 것을 목표로 삼고 있다.

부시 대통령은 그동안 팔레스타인 분쟁문제에 적극 개입하기보다는 간헐적으로 언급하는 정도였다.

부시 대통령이 취임 직후 보여온 `ABC(Anything But Clinton. 클린턴 정부 정책을 모두 배격한다는 의미) 정책' 탓도 있지만 9.11 사태와 이후 이어진 아프간.이라크 전쟁이 부시 대통령의 모든 주의를 사로잡았기 때문이라는 게 전문가들의 분석이다.

물론 그는 중동문제를 좌우하는 주요 인사들과 여러 차례 만났고 자신의 견해를 밝힌 바 있다.

지난 2002년 6월24일 팔레스타인의 독립국가 수립을 지지한다고 공약한 것과 올해 7월 16일 중동평화회의를 제안한 것이 가장 대표적인 경우다.

유대인 나라인 이스라엘의 `입김'을 많이 받는 미국의 대통령이 팔레스타인의 독립국가 수립을 공식 정책으로 밝힌 것은 부시 대통령이 최초였던 것.
하지만 이후 부시 대통령의 중동문제 해결노력과 직접 개입은 잠시뿐이었고, 실망감만 줬다.

2003년 6월 부시 대통령은 이집트의 샴 엘세이크에서 아랍 지도자들과 만났고, 아리엘 샤론 전 이스라엘 총리와 마무드 압바스 당시 팔레스타인 자치정부 총리의 회담을 주재했지만 별다른 성과를 내지 못했다.

부시 대통령의 개입이 일관되게 이스라엘의 입장만을 강화시켰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번 중동평화회의에 임하는 부시 대통령의 태도는 과거 전략과 다르다고 측근들은 밝히고 있다.

부시 대통령은 지난 주 압바스 팔레스타인 자치정부 수반과 에후드 올메르트 이스라엘 총리에게 전화했을 뿐만아니라 중요한 조연배우인 호스니 무바라크 이집트 대통령, 사우디 아라비아의 압둘라 왕, 러시아의 블라디미르 푸틴 대통령과 통화하는 등 `개인적 투자'를 크게 늘린 모습을 보였다.

또 중동평화회의 전날인 26일 백악관에서 압바스 수반과 정상회담을 갖고, 회의 다음날인 28일엔 올메르트 총리와 개별회담을 가질 예정이며 26일 저녁 국무부가 회의 참가자를 초청해 개최하는 만찬에서 연설할 계획이다.

콘돌리자 라이스 미 국무장관은 "대통령과 나는 회의에 참석한 관계 당사자들을 돕기 위해 필요한 모든 일들을 할 것"이라고 각오를 밝혔다.

일단 이번 회의는 좋은 출발을 보이고 있다.

이스라엘과 숙적인 사우디아라비아와 시리아도 대표단을 파견하는 등 16개 이상의 아랍국가들이 이번 회의에 참가할 것으로 예상된다.

중동에서 극단주의자들을 지원하는 이란의 입장을 지지, 미국의 눈엣가시 같은 존재였던 시리아는 그동안 골란고원 반환문제가 의제에 포함돼야 참석할 수 있다는 입장이었으나 이스라엘이 반대 입장을 철회함으로써 장애물은 제거했다.

사우디는 그동안 이스라엘을 독립국가로 인정하지 않았으며 지난 1996년 국제테러정상회의나 유엔에서의 회의를 제외하고는 이스라엘과 한 테이블에 앉는 것조차 거부해왔다는 점에서 사우디의 회의 참가는 적잖은 성과로 평가받고 있다.

그러나 성과를 예단하기는 아직 이르다는 지적도 나오고 있다.

무엇보다도 아프간.이라크 전쟁에 관심사가 쏠려 있는 부시 대통령이 이스라엘-팔레스타인 분쟁해결에 올인할 수 있을 지, 미국의 중재안이 첨예한 대립을 보이는 양측으로부터 절충점을 찾아낼 수 있을 지 의문이다.

또 임기를 1년여 앞둔 부시 대통령은 물론 올메르트 이스라엘 총리, 압바스 팔레스타인 자치정부 수반 등 핵심 3인방이 국내에서 정치적 입지가 상당히 약화된 상태에서 회의를 갖는다는 것도 성과를 예측하는 데 그림자를 드리우고 있다.

(워싱턴연합뉴스) 김병수 특파원 bingsoo@yn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