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수주의 비판.."정의도 없고, 연대 가치도 없어"
"교육복지위해 `돈 좀 거두겠다'고 할 수 있어야"

노무현(盧武鉉) 대통령이 18일 지속 가능한 시장 발전의 미래 전략으로 `진보적 시장주의'론을 제기하면서 새로운 세상을 만들어 나갈 `신주류'의 등장 필요성을 주창했다.

노 대통령은 이날 오전 코엑스에서 열린 혁신 벤처기업인을 위한 특별강연에서 이 같은 입장을 설파했다.

이날 강연은 지난해 제시한 미래 위기 극복을 위한 `비전 2030'을 성안하게 된 사회학적, 철학적 배경을 정교하게 제시한 것으로도 해석될 수 있었다.

노 대통령은 자신의 정책 노선을 둘러싸고 진보진영으로부터는 "신자유주의 정부", 보수진영으로부터는 "좌파정부"라는 엇갈린 비판에 직면하자 실용주의를 지향하다는 차원에서 비유적으로 "참여정부는 `좌파신자유주의' 정부"(2006.3.23 네티즌과의 대화)라고 언급한 적은 있으나, 이론적 내용을 체계화시켜 자신의 이념 노선과 비전 전략을 `진보적 시장주의'라고 이름붙여 제시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특히 노 대통령은 보수주의, 시장주의를 겨냥해 "지속가능한 미래 전략이 없다", "과연 시장이 모든 문제를 해결할 수 있겠는가"라며 강력히 비판하기도 했다.

노 대통령은 강연 말미에 "오늘은 여러분께 미래를 얘기하러 왔고, 오늘 내일의 선거를 가지고 얘기하는 것은 절대 아니다"고 단서를 달기는 했지만 전통적 의미의 진보주의를 시장친화적으로 발전시킨 `진보적 시장주의'론을 제시하며 `보수주의'를 강력하게 비판함으로써 대선 후보들간의 정책 비전 논쟁을 더욱 가열시키는 계기가 될 것으로 보인다.

▲진보적 시장주의와 `신주류'의 등장 필요성 = 노 대통령은 먼저 "시장을 주도하는 세력이 세상을 주도한다"는 말로 `기업하기 좋은 나라'를 주제로 한 특강을 풀어나갔다.

그러면서 `시장을 주도하는 세력'은 특권.반칙.독점.우월적 지위 등 기득권을 지닌 강자가 아니라, "혁신하고 창의적인 기술로 경쟁하고 성공하는 사람들, 오늘의 시장만이 아니라 내일의 시장에서도 계속경쟁력을 가질 수 있는 사람들"이어야 한다고 했다.

그래야만 약육강식의 세상이 아니라, 스스로 노력하고 연구하는 사람이 경쟁력을 갖는 사회가 될 수 있다는 것.
노 대통령은 이 대목에서 `신주류'의 등장 필요성을 제기했다.

"우리 사회에 신주류가 등장해야 한다.

그 신주류는 시장의 신주류일 것이다.

신주류가 새로운 세상을 만들어야 된다"며 "미래에 대한 많은 불안을 해결하고 밝은 미래를 약속할 수 있는 우리 사회의 신주류이어야 하며, 이는 시장에서 나올 수밖에 없다"고 강조했다.

곧바로 노 대통령은 국가와 정부의 역할이라는 주제로 말을 이어갔다.

기업하기 좋은 나라를 만들기 위해 국가와 정부는 무엇을 해야 하느냐는 주제였다.

노 대통령은 "시장주의 입장의 요구는 작은 정부하라, 정부는 손 떼고 시장에 맡겨라, 규제를 줄이라, 해고를 자유롭게 허용하라, 시장을 개방하라, 세금도 줄여라, 복지부담도 줄이라는 것이고, 이에 반해 시민사회는 인권.노동.경제적 약자.환경을 보호하라, 안전.질서를 위해 시장에 대해 각종 규제를 하고 부담을 지우고, 국가가 적극적으로 개입하라는 것"이라며 대립하는 쟁점들을 열거했다.

노 대통령은 그러면서 "국가가 얼마나 어떻게 개입할 것인지를 결정하는 것이 바로 정치의 요체이고, A당, B당, 여당, 야당, 진보, 보수 옥신각신 싸우는데 이 싸우는 요체는 바로 얼마나 개입할 것이냐는 것"이라고 말했다.

이어 국가와 시장.시민사회의 관계에 대한 역사를 중상주의 사상을 바탕으로 한 경찰국가 시대로부터 야경국가, 복지국가 등의 순으로 역사적인 전개과정을 소개한 뒤 현재의 논쟁 구도는 "한쪽은 신자유주의, 또 다른 쪽은 과거의 복지국가는 아니지만 새로운 복지국가, 제3의 길, 사회투자국가 이론이 논쟁을 하고 있다"고 말했다.

전통적 의미의 사회주의는 이미 쇠퇴했다는 것.
노 대통령은 "신자유주의는 작은 정부하라, 규제 철폐하라, 해고를 자유롭게 하라, 공기업을 민영화하라, 시장을 세계로 개방하라는 것이고, 신자유주의 노선이 채택된 나라는 시장우위의 국가이며, 국가권력은 시장의 이익을 대변하는 권력"이라고 규정했다.

그러면서 "오늘날 보수주의 정치노선은 여전히 이 주장을 멈추지 않고 그 결과로써 양극화, 사회적 갈등의 심화, 노동의 유연화로 인한 노동 품질 저하로 인해 미래 경쟁력의 저하 문제가 지금 새롭게 발생하고 있다"고 문제점을 지적했다.

노 대통령은 이어 "한편으로 제3의 길, 사회투자국가론은 신자유주의의 폐해를 극복하기 위한 진보의 새로운 전략"이라고 규정했다.

"핵심은 사람이 경쟁력이라는 것이며, 잘 교육받은 국민, 역량있는 국민, 건강하고 안정된 국민, 희망을 가지고 의욕에 넘치는 국민 이것이 밑천이며, 이를 위해 교육복지의 기회가 공정하게 열려 있어야 된다"고 말했다.

노 대통령은 "경쟁력이 밑천이기 때문에 교육복지 지출은 소비가 아니라 투자이며, 미래의 경쟁력을 위한 선제적인 투자"라며 "1, 2년의 경쟁력이 아니라 5년, 10년, 30년, 50년의 경쟁력을 생각해보면 교육투자는 지속가능한 경제를 위한 미래전략"이라고 강조했다.

노 대통령은 사회투자국가론에 대해 "전통적 진보에서는 시장주의와 복지주의가 서로 대결적 균형을 이루고 있었는데, 이것은 (둘의) 융합을 해보자는 시도이고, 진보의 이상을 버리지 않고 세계 경제에 대응해 가는 전략으로서 새로운 사회를 한번 만들어 보자는 것"이라며 "특징은 경제정책과 사회정책, 시장과 진보주의가 융합이 돼 있다는 점으로 이를 `시장친화적인 진보주의' 또는 보수적인 시장주의와 비교해서 `진보적인 시장주의'라고 말할 수 있을지 모르겠다"고 말했다.

이러한 정책노선을 추진한 국가로 영국의 토니 블레어 정부, 미국의 클린턴 정부 등을 예로 들었다.

▲"감세 곤란..`돈 좀 거두겠다'고 하는 나라여야" = 노 대통령은 `진보적 시장주의' 노선 제시를 통해 "앞으로 `시장에서 손을 떼라'는 얘기는 안해주면 좋겠다.

`합리적으로 개입하라'고 말하면 고맙겠다"고 강조했다.

투명하고 공정한 시장, 안정된 시장관리가 국가의 책임이라는 것이다.

노 대통령은 "하도 시장에서 손 떼라고 하는 바람에 정말 떼 버릴까 하는 생각이 들 때가 있었다"고 농담조로 얘기한 뒤 "몇 사람이 떼라 떼라 한다고, 몇 개 언론이 떼라 떼라 한다고 제가 그렇게 할 수 없고, 한번 확 떼버리고 정말 죽는가 사는가 보고 싶었다"고 말해 웃음을 자아내기도 했다.

노 대통령은 `기업하기 좋은 나라'를 위한 국가의 중요한 역할 중 하나로 "인재를 키우는 것"이라는 점을 들며 국가가 교육과 보육에 책임을 져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러면서 "이 문제에 대해서는 정치하는 사람이 `인재를 키우자' `전적으로 국가가 책임지자' 이렇게 말하는 것이 중요한 것이 아니고, 국민들한테 `돈 조금 더 냅시다'(라고 말할 수 있어야 한다). 교육예산으로 GDP 1%만 더 내주면 우리나라 교육문제는 화끈하게 해결돼 버린다"며 "문제는 돈이다.

어떻든 이거 해야 된다"고 강조했다.

노대통령은 이어 "결론을 교육을 지원하는 나라..이렇게 말하는 것은 거짓말이고, `돈을 쓸 줄 아는 나라' '돈 좀 거두겠다고 하는 나라' 라야 한다"며 "하물며 `세금 깎겠다'고 하면 정말 곤란하다.

우리가 교육복지 이쪽에 지출하는 비용이 선진국의 절반도 안되는 수준이기 때문에 그것은 안되는 일"이라고 역설했다.

이밖에 기업하기 좋은 나라를 위한 정부의 역할로 혁신을 지원하고. 고용을 지원하며, 적극적으로 시장을 넓혀가며, 독점적.우월적.특권적 기득권을 가진 시장의 강자로부터 자유로운 시장을 만들어줘야 하며, 투명하고 공정한 시장을 만들어야 하는 것이라고 열거했다.

특히 투명하고 공정한 시장을 위해 공정거래위원회를 강화하고 공정거래위원회의 조사권 내지 수사권, 금융정보요구권을 강화시켜야 한다고 역설했다.

그러면서 "`잃어버린 10년'을 얘기하는 사람들이 있는데, 그들은 왕년에 관치경제 시대, 잘 주물러진 시대의 관료들 또는 권력자들, 또 관치경제 시대에 정경유착해서 잘 나가던, 공정경쟁을 위해 내놓아야 될 것을 안내놓고 버티던 사람들"이라고 지적하며 "여러분은 지난 10년 동안 잃어버린 게 뭐가 있느냐. 있으면 신고하라. 찾아주겠다"고 말했다.

▲"보수주의엔 지속가능한 미래 전략없어" = 노 대통령은 결론적으로 보수주의적 노선으로는 지속가능한 미래가 보장될 수 없다며 비판적 입장을 피력했다.

우선 노 대통령은 "과연 한국의 보수주의는 특권과 반칙, 유착의 문화를 걷어내고 원칙 통하는 사회를 만들 것인가, 과연 투명하고 공정한 시장과 사회를 만들 것인가, 강자의 기득권이 아니라 정정당당하게 경쟁하는 기업, 혁신하는 기업을 지원할 것인가, 나아가 시장에서 낙오한 많은 약자들을 보호하고 교육훈련 프로그램에 넣어서 기업이 필요로 하는 직장인으로 복귀시켜줄 것인가"라고 자문했다.

노 대통령은 "(이를 위해서는) 돈이 많이 든다.

`비전 2030'이 바로 이런 프로그램인데 이것을 반대하는 것을 보니까 그럴 생각이 없는 것 아닌가.

기업하기 좋은 나라에 대한 보수주의의 생각은 `작은 정부하라', `시장에 맡겨라'는 것인데 그러면 공정한 시장이 되기가 어려울 것"이라고 강조했다.

그리고는 "제 생각에는 보수주의의 문제점은 정의가 없고, 연대의식, 연대의 가치도 없고, 지속가능한 미래에 대한 전략도 찾지 못했다"며 "`미래는 어떻게 되냐'고 하면 오로지 보이지 않는 손이고, `성장하면 해결된다'고 하는데 이것이 사실이 아니라는 것은 이미 역사적으로 증명됐다"고 지적했다.

노 대통령은 또 "성장만 되면 다 해결되고, 세금은 깎고 돈은 줄이자, 정부는 줄이자고 하면서, 또 해주겠다고 약속하는 것은 또 보따리가 한 보따리"라며 "그러니까 정치의 신뢰를 깨트려 나가는 것이고, 이렇게 하면 정치가 망하고, 정치가 망하면 나라가 망한다"고 말했다.

특히 "시장주의와 진보주의의 차이를 한마디로 얘기하면, 국가의 역할을 구경꾼으로 `가급적이면 간섭하지 말라' 또는 `강자의 편에 서라' 이것이 보수주의라고 하면, `적극적으로 개입하라'는 것이 진보주의"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작은 정부' 이론을 놓고 제가 지금까지 싸우고 있는데, 참 섭섭한 것은 개입해야 덕을 볼 만한 사람들이 저더러 자꾸 개입하지 말라는 것"이라고 토로했다.

노 대통령은 이와 함께 "보수주의는 국내 정책에 있어서도 대결주의를 취하지만, 대외정책에 있어서도 대결주의를 취하는 경우가 보통"이라고 전제한 뒤 "지금 미국을 보라. 어느 나라 없이 흔히 강경파 하는 쪽이 대결주의를 갖고 있고, 일본의 보수주의 한번 보라. 대결주의 입장에 항상 서 있고, 국수주의는 대결주의"라며 "그래서 평화는 진보주의에 가깝다"고 강조했다.

(서울연합뉴스) 성기홍 기자 sgh@yn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