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임정치 구현에 대한 강한 인식 때문"

노무현(盧武鉉) 대통령은 10일 6.10 민주항쟁 20주년 기념식에서 "당정분리와 같은 제도는 고쳐야 한다"고 말했다.

`당정분리' 원칙은 노 대통령이 취임후 줄곧 표방해온 핵심적 국정철학이라는 점에서 당정분리제도의 수정 필요성을 제기한 것은 노 대통령의 임기말 국정 구상, 대선에서의 역할 등과 맞물려 주목되는 변화이다.

노 대통령이 당정분리에 대한 바뀐 인식의 일단을 피력한 것은 이번이 처음은 아니다.

지난 8일 원광대 명예정치학 박사 수여식후 특강에서도 이 같은 인식을 표출했다.

노 대통령은 당시에도 "정치의 중심은 정당이고, 대통령의 정권은 당으로부터 탄생한 것"이라며 "앞으로 당정분리도 재검토해 봐야 한다"고 말했다.

특히 열린우리당 탈당전 노 대통령과 여당의 적잖은 갈등, 대선예비주자들의 차별화 시도 등을 염두에 둔 듯 "대통령 따로, 당 따로, 대통령이 책임지느냐, 당이 책임지느냐...당이 대통령 흔들어놓고, 박살내놓고 당이 심판받으러 가는데, 당과 대통령이 같은 것이냐, 다른 것이냐"고 반문하기도 했다.

결국 국민의 심판을 어렵게 만들게 하고 "책임없는 정치가 돼 버린다"고 진단한 것.
이 같은 인식은 노 대통령이 그간 추진해왔던 당정분리제도가 갖는 한계에 대한 '반성'에서 비롯됐다고 해석할 수 있다.

노 대통령은 임기 동안 당정분리의 긍정성을 줄곧 피력하면서 당의 반발에도 불구, 이 같은 방침을 고수해왔었다.

청와대 핵심관계자는 이날 연합뉴스와의 전화통화에서 "당정분리제를 고쳐야 한다는 언급은 당정분리제도에 대한 회고적 반성에서 출발한 것"이라며 "당정분리로 포괄돼 있던 과제, 성과들을 평가하고 책임있는 정치로 한단계 발전시키기 위한 방안을 모색해보자는 취지의 발언"이라고 말했다.

당정분리 구상은 노 대통령이 지난 2002년 대통령후보가 되기 이전부터 천명됐었고, 대통령 취임 이후 국정운영에 반영됐다.

노 대통령 당정분리의 핵심은 대통령이 겸임하고 있는 여당 총재직의 포기였고, 과거 '제왕적 대통령'으로서 향유하던 당직 인선권과 주요 선거의 공천권을 내놓은 것이었다.

이에 따라 노 대통령은 당과 국회 운영에 개입하지 않는다는 원칙을 견지하면서 국정운영은 청와대에 맡기고 당의 불필요한 국정간섭은 자제하라는 입장을 유지했고, 참여정부 초기 잠시 존재했던 청와대 정무수석직도 2004년 5월 폐지하고 당 대표와의 정례 주례회동도 없앴다.

노 대통령은 이토록 강한 집념을 갖고 있던 당정분리제를 현 시점에서 고쳐야 한다는 문제를 제기한 것은 '책임정치' 구현에 대한 강한 인식 때문이라고 청와대 관계자들은 전했다.

한 관계자는 "당정분리는 대통령을 배출한 여당의 책임정치라는 면에서 한계가 있었다"고 말했다.

대선 국면에서 전개되고 있는 최근 정국 상황도 노 대통령의 인식변화와 무관치 않은 것으로 관측된다.

'한배를 탄 공동운명체'라고 여겼던 열린우리당 대선 예비주자들의 대통령 차별화 움직임, "대통령은 대선에 관여하지 말라"는 여야를 가리지 않은 정치권의 공세 등이 대통령과 정당의 '책임정치'라는 측면에서 올바르지 않다는 노 대통령의 인식을 더욱 심화시켰을 것이라는 해석이다.

노 대통령은 원광대 강연에서 자신의 참여정부 평가포럼 강연을 공무원의 선거중립 의무 위반으로 판정한 선관위 결정에 문제를 제기하며 "대통령이 가치를 갖고 전략을 갖고 정당과 함께 치열한 선거를 통해 정권을 잡고, 비록 내가 (후보로) 나오지 않더라도 그 다음 정권을 지키는 데까지 의무를 가지고 있고, 참여정부 이후의 정부가 여전히 민주정부가 되도록 지켜야 할 의무가 있다"고 말한 것도 책임정치에 대한 인식에서 비롯된 것이라는 청와대 설명이다.

선관위 결정에 대해 강한 불만을 표시하며 관련 선거법 조항을 "위헌"이라고까지 규정하며 자신의 발언 수위를 전혀 낮추지 않는 것 또한 노 대통령이 책임정치라는 측면에서 접근하기 때문으로 보인다.

청와대 관계자는 "당정분리 재검토 언급을 대통령이 정치나 정국에 깊이 관여하겠다는 것으로 풀이하는 것은 비약"이라며 "당정분리로 과거 '제왕적 대통령, 총재'로서의 폐해는 일정하게 해소된 만큼 이제는 당정분리의 한계를 뛰어넘고 책임정치를 제도화해야 할 때가 됐다는 판단에서 비롯된 언급"이라고 말했다.

(서울연합뉴스) 성기홍 기자 sgh@yn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