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 연구진이 B형간염을 일으키는 몸속 바이러스가 지방간 발생의 한 원인이라는 사실을 처음으로 밝혀냈다.

이 연구는 그동안 간염 간경화 간암 등 각종 간질환을 유발하는 주범으로 지목돼 온 지방간을 치료할 수 있는 백신 개발의 길을 열었다는 과학계의 평가를 받고 있다.

정재훈 부산대 교수 연구팀은 유대열 한국생명공학연구원 책임연구원과 함께 인체 내에서 B형간염 바이러스가 대거 생성될 경우 지방간이 생긴다는 것을 동물실험을 통해 확인했다고 15일 밝혔다.

지금까지 B형간염 바이러스가 간염 간경변 간암을 일으키는 것은 학계에 보고됐으나 지방간을 일으키는 원인이라는 사실을 규명해 낸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특히 지방간의 경우 알코올 비만 고지혈증 운동부족 등에 의해 생기는 것으로 알려져 왔을 뿐 정확한 발병 메커니즘이 밝혀지지 않았다.

정 교수 팀은 우리나라의 지방간 보유자 중 20%가량이 B형간염 바이러스에 의해 발병된 것으로 추정했다.

연구팀은 동물실험을 통해 B형간염 바이러스에 의해 만들어지는 단백질 중 하나인 'HBx'가 간세포에서 과다하게 나타날 경우 이 간세포 내에 지방이 일반적인 간세포의 지방 축적량보다 세 배 이상으로 증가한다는 것을 확인했다. 특히 HBx가 특이하게 발현하도록 제작한 형질 전환 마우스 모델의 간조직에서 지방간이 유도되었다는 것을 연구팀은 검증했다.

이 과정에서 간세포 내에서 지방 생성 유전자 발현을 조절하는 세포단백질인 SREBP와 PPAR감마의 생성을 B형간염 바이러스의 HBx가 증가시킨 사실을 밝혀냈다. 아울러 HBx가 생성된 간세포는 일반 간에 비해 두 배 이상 크다는 것도 발견했다.

정 교수는 "지방간 중에서도 이같이 바이러스에 의해 발생되는 지방간은 다른 이유로 생기는 지방간보다 훨씬 위험하다"고 설명했다. 바이러스로 인해 지방간이 발생하면 지방간에 염증을 일으킬 가능성이 높아져 각종 간질환으로 발전할 수 있기 때문이라는 게 정 교수의 설명이다.

그는 "이번 연구로 지방간의 간질환 전이 여부를 조기에 진단하거나 치료제를 개발할 수 있는 길을 열게 됐다"며 "앞으로 임상실험을 통해 구체적인 한국인의 지방간 원인과 치료제 개발에 힘을 쏟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이번 연구는 내과 질환 관련 최고 권위 학술지인 '가스트로엔테롤로지' 5월호에 게재된다.

오춘호 기자 ohchoon@hankyung.com

[용어풀이]

지방간=간세포가 곳곳에 지방으로 채워져 간이 거의 지방으로 바뀐 것 같은 경우를 지방간이라고 한다.

당뇨병이나 갑상선 등 내분비 장애나 알코올 비만 등에 의해 발병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20대 이상 성인의 25%가량이 그 징후를 갖고 있고 간경화 간암 등 심각한 간질환으로 발전할 가능성이 높다는 것이 의학계의 설명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