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과 포옹하고 일본과는 얼음 녹인다"

최근 한반도를 둘러싼 국제정세가 급변하고 있는 가운데 중국의 원자바오(溫家寶) 총리가 오는 10일부터 한국과 일본 방문길에 오른다.

원 총리의 이번 순방은 한중 수교 15주년과 중일 수교 35주년을 기념하는 친선 교류가 명분이지만 동북아지역에 대한 미국의 영향력 확대를 견제하려는 속셈도 깔려있다.

이웃국가인 한국 및 일본과의 경제협력 확대를 통해 동북아지역을 세계 3대 경제축으로 구축, 미국과 유럽에 맞설 수 있는 동북아지역의 새로운 정치경제적 질서를 본격 추진하겠다는 것이다.


◇ 한국과 전면적 협력관계 구축 = 원 총리는 이번 한국 방문을 통해 수교 이후 15년간 다져온 상호 신뢰와 경제 교류를 바탕으로 한.중간 전면적 협력 동반자 관계를 선언할 예정이다.

원 총리는 이를 위해 한국과 전략적 의사소통을 강화하고 호혜적 협력을 촉진하며 공동이익 확대를 통해 양국 관계의 새로운 발전을 이룩하는 등 3가지를 이번 한국 방문의 목표로 설정했다.

그는 먼저 전략적 의사소통과 호혜협력 강화를 위해 고위급 지도자는 물론 정당이나 단체들의 상호 방문과 교류를 활성화하고 특히 양국 해군과 공군의 핫라인 설치에 합의할 것으로 보인다.

중국은 핫라인 설치문제와 관련, 혈맹관계인 북한의 반발을 우려해 소극적인 입장을 보였으나 최근 북핵 6자회담을 통해 북미 관계가 해빙기를 맞자 적극적으로 손을 내민 것으로 분석된다.

이와 함께 원 총리는 남북한의 평화통일을 위해 촉매 역할을 하겠다는 입장을 전달하고 대신 한국에 대해서는 '하나의 중국' 원칙과 대만 독립 반대 입장을 재천명해줄 것을 요구할 전망이다.

원 총리는 특히 한.미 자유무역협정(FTA) 체결을 중국에 대한 미국의 견제 의도로 보고 이번 한중 정상회담을 통해 한.중 FTA 협상을 서둘러 착수하자고 제안하며 맞불을 놓을 것으로 보인다.

이에 따라 원 총리의 이번 방한을 계기로 한.중 FTA 논의가 급물살을 타는 것은 물론 한.중 투자보호협정 개정, 한.중 고용제 노무협력 양해각서 체결 문제도 빠르게 진행될 것으로 예상된다.

원 총리는 또 양국 무역문제와 관련, 수교 20주년을 맞는 2012년까지 교역액을 2천억달러로 잡았던 목표치를 조기 실현하는 한편 대한 무역적자 해소를 위한 구매사절단 파견을 요청할 계획이다.

중국은 이밖에 세계 최강국인 미국에 맞서 한중일 3개국과 아세안(동남아국가연합), 아시아태평양경제협력체(APEC) 등을 통한 협력을 강화하고 유엔에 힘을 실어주자고 요청할 것으로 알려졌다.


◇ '얼음' 녹이기 위한 일본 방문 = 원 총리는 지난해 10월 중국을 방문한 아베 신조(安倍晋三) 일본 총리와 만나 얼음을 깼다면 이번에는 일본에 가서 얼음을 녹이기 위한 회담을 하게 된다.

중국은 7년만에 이뤄지는 총리의 방일을 앞두고 신사참배와 역사교과서 왜곡, 위안부 문제, 동중국해 가스전 문제 등 양국간 첨예한 쟁점에도 불구하고 큰 소리 한번 내지 않고 새로운 밀월관계를 구축하기 위해 공을 들여왔다.

원 총리는 오는 11일 일본 방문길에 올라 사흘간 일본에 머물면서 일본 게이단렌(經團連)이 주최하는 오찬에 참석하는 등 우선 논쟁이 소지가 적은 대일 경제협력 외교에 주력할 것으로 보인다.

외교 소식통들에 따르면 원 총리는 방일 첫날 아베 총리와 정상회담을 갖고 환영 만찬에 참석하는데 이어 12일에는 중의원 의장을 방문한 뒤 국회에서 연설을 한다.

아울러 나카가와 히데나오(中川秀直) 자민당 간사장, 오자와 이치로(小澤一郞) 미당 대표 등 여야 대표와도 회담을 할 예정이다.

일본은 양국 정상회담에서 공동문서를 발표하기 위해 중국측과 최종 조율을 벌이고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일본 언론은 양국이 공동문서에서 10월 아베 총리의 중국 방문시 후진타오(胡錦濤) 국가주석과 합의한 '전략적 호혜관계'를 체제 및 가치관의 차이를 극복한 '상호 존중'의 관계로 자리매김하는 한편 환경과 에너지 절약 분야 등의 협력 강화를 표명하게 될 것으로 전망된다.

양국은 지난해 아베 총리의 방중시에는 '공동 언론 발표문'에 그쳤으나, 이번에는 한 단계 격상된 '공동문서'를 발표함으로써 양국 관계의 중요성을 국내외에 과시하려는 의도도 담겨있는 것으로 보인다.

아베 총리가 지난달 중국을 방문한 나카가와 간사장 등을 통해 후 국가주석에게 친서를 전달하고 위안부 문제와 관련된 자신의 발언에 대해 '사과'의 뜻을 표한 것도 원 총리의 방일에 앞서 사전 분위기 조성 노력과 무관치 않다.

원 총리는 이어 12일 오전 도쿄에서 열리는 중일에너지포럼에 참석하고 낮에는 일본 게이단렌 주최 오찬 연설을 통해 향후 양국간 경제협력 방안을 집중 거론할 방침으로 전해졌다.

또 13일에는 교토(京都), 오사카(大阪)로 이동, 현지 경제계 인사들과 두루 만나는 등 방일 기간 양국간 경제교류 활성화 방안 마련에 집중할 계획인 것으로 전해졌다.

그러나 원 총리의 이번 일본 방문으로 중일 관계가 완전 회복의 길로 들어설 지는 불투명하다.

일각에서는 원 총리의 일본방문 기간이 당초 7일로 알려졌다 닷 새로 줄고 다시 사흘로 축소 조정된 것도 이런 불투명성을 반영한 것이라는 분석을 내놓고 있다.

(베이징.도쿄연합뉴스) 권영석 최이락 특파원 yskwon@yna.co.krchoinal@yn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