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진국의 경우 기상정보는 이미 블루오션 산업으로 성장하고 있다”(필 존스 영국 이스트앵글리아대 교수),“미국에서는 동네 수퍼마켓도 그날 진열할 상품을 선택할 때 유료의 맞춤형 기상정보를 활용한다”(마이클 슐레진저 미국 일리노이대 교수)

한국경제신문이 최근 국내외에서 잇따라 발생하고 있는 이상기온 현상과 기업의 대처 방법을 알아보기 위해 마련한 ‘기상학계 거장들의 대담’에서 슐레진저 교수와 존스 교수는 기상정보는 더 이상 공짜일수 없다고 지적했다.

온난화가 진행되는 되는 속도 만큼이나 기상 관측기술 및 정보 분야가 대박 산업으로 탈바꿈할 가능성도 커지고 있다는 분석이다.

이들은 앞으로 다가올 지구 온난화 시대에서는 석유나 석탄 등 화석연료를 사용하지 않는 ‘비(非)탄소계 경제’(non-carbon economy)의 돌파구를 여는 기업이 인터넷 시대의 기린아 ‘구글’과 같은 존재가 될 것으로 전망했다.

그러나 한국의 경우 STX조선 한솔개발 롯데월드 등 일부 업체만이 비용 절감 등을 위해 유료 맞춤형 기상정보를 이용할 뿐 여전히 대부분은 기상정보에 대해 공짜라는 인식이 강하다.

“실제 국내 기상정보 가공업체는 10여개 불과하며 지난해 국내 기상산업 매출규모는 250억원 내외에 그쳤다.

산업이라고 말하기도 어려운 실정이다”(이만기 기상청장)

지난 22일 권원태 기상연구소 기후연구실장이 최근 기상학회가 주최한 심포지엄에 참석차 방한한 슐레진저 교수와 존스 교수를 만나 대담을 나눴다.

▶권원태 실장=최근 발표된 IPCC(기후변동에 관한 정부간 패널) 보고서에서 나와있듯이 지구 온난화가 진행되고 있다는 사실은 이제 부인할 수 없을 것 같습니다.

그러나 온실가스 감축이 지구 온난화에 큰 영향을 미치지도 못하면서 많은 비용만 들어간다고 온실가스 감축에 회의적인 시각을 가진 사람들도 없지 않는데요.

▶마이클 슐레진저 교수=그런 주장을 하는 사람들은 이제 소수에 불과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들의 목소리가 계속되는 것은 언론이 양쪽의 주장을 공평하게 전달한다는 차원에서 계속 발언권을 주기 때문인 것 같습니다.

최근 미국 캘리포니아 주가 최근 자동차 배기가스 1% 감축을 의무화하는 정책을 발효시키는 등 교토의정서의 비준을 거부했던 부시 정부도 이제 조금씩 달라지고 있습니다.

물론 이러한 정책에 대해 미국의 자동차 업체들이 소송에 나서는 등 진통이 있긴 하지만 이제 지구 온난화를 늦추기 위한 전 세계적인 노력이 본격화되는 추세입니다.

▶권 실장=그렇다면 한국 정부와 기업들은 어떻게 대처해야 할까요.

▶필 존스 교수=정부 차원에서 볼 때 부처별로 일관된 정책(action)을 취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이 가장 중요합니다.

예를 들어 환경부에서 아무리 에너지 효율화와 온실가스 감축을 얘기해 봤자 또다른 정부부처는 주택을 건설하면서 이러한 원칙들을 무시한다면 아무런 효과가 없을 것입니다.

영국에서는 토니 블레어 총리에 대해 말만 하고 행동에 나서지 않는다는 비판을 자주 받는데 한국에서는 그러한 일이 일어나서는 안됩니다.

▶슐레진저 교수=아울러 기존 에너지 효율화 작업에 적극적인 노력을 해야 합니다.

에너지의 효율성을 증가시키는 데 그리 비용이 많이 들어가지도 않습니다.

가령 호텔에서는 열쇠를 꽂지 않으면 방 안에 전원이 들어오지 않죠.만약 이러한 시스템을 신축되는 일반 건물에도 그대로 적용시키는 법안을 통과시킨다면 어떨까요.

이처럼 에너지 효율화는 간단한 아이디어와 약간의 불편 감수로 충분히 달성할 수 있습니다.

▶존스 교수=대체에너지 개발도 서둘러야 합니다.

BP와 엑손모빌을 볼까요.

BP는 더이상 브리티시 페트롤륨(British Petroleum)이라는 이름을 쓰지 않습니다.

물론 아직까지 석유 등 화석연료 사업을 하고 있긴 하지만 천문학적인 규모의 자금을 대체에너지 개발에 투입하고 있습니다.

반면 정유업계 1위 기업인 엑손모빌은 아직까지도 지구 온난화 문제를 애써 외면하며 온실가스가 지구 온난화의 원인이 아니라고 주장하는 이들을 측면 지원하고 있지요.

앞으로 어떤 기업이 주도권을 잡을 것인지는 명약관화한 일입니다.

▶슐레진저 교수=삼성과 LG와 같은 혁신적인 기업이 많다는 점도 앞으로 한국의 미래를 밝게 합니다.

애플의 스티브 잡스와 스티븐 워즈니악이 퍼스널 컴퓨터의 시대를 열었고 구글의 래리 페이지와 세르게이 브린이 웹의 전성시대를 개막했듯이 앞으로 전개될 지구 온난화 시대에는 비탄소경제로의 돌파구를 마련한 혁신가에게 영광이 돌아갈 것입니다.

▶권 실장=미국이나 일본 등 선진국과는 달리 한국에서는 기상정보를 제공해 돈을 버는 산업이 활성화돼 있지 않습니다.

어떻게 하면 기상정보 산업을 진흥시킬 수 있을까요.

▶존스 교수=기상정보가 돈이 된다는 인식이 먼저 필요합니다.

사실 원래 미국이나 영국을 제외한 유럽에서도 기상정보는 공짜였습니다.

그러나 영국의 기상업자들이 미국이나 유럽으로 건너가 사업을 시작했고 점차 이들이 제공하는 맞춤형 기상정보에 대해 수요가 증가하면서 산업 자체가 커지기 시작했지요.

▶슐레진저 교수=미국의 경우 동네 슈퍼마켓에서 어떠한 상품을 구매해 진열할 것인지를 결정할 때에도 이러한 유료 사업자들의 정보를 이용합니다.

이들이 단순히 날씨가 광역적으로 맑다,흐리다의 수준이 아닌 지역별,기업별로 세분화된 기상정보를 서비스하기 때문입니다.

이 정보를 통해 이익을 볼 수 있고 그래서 어느 정도의 비용을 기꺼이 지불하려는 사람들이 늘어난다면 기상 산업은 자연히 활성화될 것입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기상청이 생산하는 데이터를 해석해 유의미한 정보를 만들어낼 줄 아는 인력들이 필요합니다.

실제 미국 등 선진국의 기상 사업자들은 기상학을 전공한 대학원생들을 가장 많이 고용하고 있습니다.

▶권 실장=지난 겨울 한국에서는 한강이 15년만에 얼지 않았을 만큼 따뜻했습니다.

하지만 3월초에는 오히려 강추위와 함께 눈이 내리는 등 이상 기상현상이 나타났는데요.

또 재작년 겨울에는 눈도 많이 오고 날씨도 추웠는데 이러한 모순된 현상이 반복되는 이유는 무엇인가요.

지구 온난화로 인해 계절 간 변동성이 증가한 것인지요.

▶존스 교수=아직까지 지구 온난화가 계절의 변동성을 증가시켰다고 판단할 수는 없습니다.

과거에도 따뜻한 겨울,추운 겨울이 반복적으로 일어났으니까요.

또 수치상으로도 추운 겨울과 따뜻한 겨울의 평균 온도차가 과거에 비해 커졌다고 보기는 어렵습니다.

게다가 지구 온난화는 최근 100년 간 일어나고 있는 현상으로 기후 변동성과의 관계를 따져보기에는 너무나 짧은 시간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일반 시민들이 계절의 변동성이 커졌다고 느끼는 것은 세계 각지에서 보고되는 폭설,홍수,태풍 등 극단적 현상들(the Extremes) 때문인 것으로 보입니다.

이러한 현상들은 변동성이 커져서가 아니라 지구 온난화로 인해 대기권의 에너지 총량이 증가한 데 따른 것입니다.

▶권 실장=최근 한국의 기상청이 잇따른 기상오보로 곤욕을 치렀습니다.

특히 일반 시민들은 기상청이 슈퍼컴퓨터를 가지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왜 이렇게 기상예보가 맞지 않느냐며 항의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미국이나 영국의 기상예보 시스템은 어떠한지 궁금합니다.

▶존스 교수=영국이나 미국의 기상청에서도 매년 평가를 해보지만 예보가 실제와 맞지 않는 경우가 많습니다.

기상 현상은 마치 살아있는 생물과도 같아 애초부터 100% 예측은 불가능합니다.

지난 50년 간 기상예보 시스템에 많은 발전이 있었고 또 현재도 발전해가고 있지만 한계가 있다는 점을 분명히 인식해야 합니다.

▶권 실장=사실 한국의 경우 저기압이 발달하기 시작하는 서해에 대한 관측 데이터가 부족해 기상예보가 더 힘든 측면도 있습니다.

일본에서는 이미 발달한 저기압을 대상으로 예보를 하고 관측 자료가 많기 때문에 상대적으로 정확한 예보를 할 수 있지요.

▶존스 교수=기상예보의 정확성을 객관적으로 평가할 수 있는 독립적 기구를 마련하는 방안도 도입해 볼 만합니다.

영국에서는 국립감사원(National Audit Office)이 기상청에서 발표한 기상예보를 직접 평가해 잘 맞춘 직원들에 대해 인센티브를 지급하고 있습니다.

물론 그러한 정책을 실시한다고 해서 기상예보의 정확성이 100%로 향상되지는 않겠지요.

이호기 기자 hglee@hankyung.com


<용어설명>

◆비(非)탄소경제=석유,석탄 등 화석연료를 에너지 기반으로 하는 ‘탄소경제’(Carbon economy)의 반대개념.즉 수소,태양열,풍력,지열 등 신재생에너지를 기반으로 하는 경제구조를 의미한다.

◆필 존스 (Phil Jones)
1974년 영국 뉴캐슬어폰타인 대학(University of Newcasle-upon tyne)에서 도시공학으로 석사학위를 받았으며 1977년 동대학원에서 박사학위를 취득했다.

1992년부터 4년간 왕립기상학회의 일원으로 ‘국제 기후학 저널‘(International Journal of Climatology)의 편집위원회에도 참여했다.

1998년에는 아카데미아 유러피아(Academia Europea)의 일원으로 선출됐으며 2001년에는 미국기상학회(American Meteorological Society)의 멤버로 활동하기도 했다.

현재 이스트앵글리아 대학(Univ.East Anglia) 환경학과 교수 겸 기후연구소장(Director,Climate Research Unit)으로 재직 중이다.

올해 초 영국의 유력 인디펜던트紙와의 인터뷰에서 “엘니뇨와 지구 온난화 현상으로 2006년보다 2007년이 더 더울 것이며 금년은 기록상 가장 더운 해가 될 것”이라고 말해 화제를 낳기도 했다.

◆마이클 슐레진저 (Michael E.Schlesinger)
1965년 미국 LA 소재 캘리포니아 대학(University of California at L.A.)에서 공학을 전공하고 1970년에 동대학원에서 유체역학으로 석사학위를 받았으며 1976년에는 기상학으로 박사학위를 취득했다.

1979년부터 3년간 미 항공우주국(NASA)에서 기상전문가로 활동했으며 과학계를 이끄는 500인,영향력 있는 세계 과학인 1000명에 선정되기도 했다.

과학기술 분야 세계인명사전(Who‘s Who)에도 등재돼 있으며 아카데미아 유러피아(Academia Europea)의 객원멤버로도 활동 중이다.

현재 일리노이 대학(Univ.Illinois at Urbana-Champaign) 대기과학과 교수 겸 기후연구부장(Direcitor,Climate Research Group)으로 재직하고 있다.

◆권원태 박사

現 기상청 기상연구소 기후연구실장
-서울대 지구과학교육과 졸업
-1983년 미국 일리노이 대학교 기상학과 석사
-1989년 미국 텍사스 A&M 대학교 기상학과 이학박사
-1991년 기상청 기상연구소 기상연구관
-2000년~ 기상청 기상연구소 기후연구실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