흡연-폐암 개별적 인과관계ㆍ담배 결함 항소심 판단 대상
입증책임 놓고 재공방 치열할 듯

7년여를 끈 국내 첫 `담배소송'에서 흡연과 폐암의 직접적인 인과관계를 인정할 증거가 없다는 법원의 판결이 나왔다.

재판부가 고심 끝에 판결을 내렸지만 사안의 중대성이나 사회적 영향력 등을 감안할 때 담배의 유해성을 둘러싼 공방은 항소심을 거쳐 최종적으로 대법원에서 결론이 내려질 것이라는 게 일반적인 관측이다.

◇`흡연ㆍ폐암 인과관계' 판단은 항소심으로 = 1심 패소 판결로 `담배의 유해성'을 둘러싼 공방은 항소심으로 이어지게 됐다.

1심 재판부는 흡연과 폐암의 인과관계 여부와 관련, 단순히 특정 집단을 대상으로 일정한 조건을 가정한 채 통계적 관련성을 파악하는 역학적 인과관계는 인정된다고 밝혔다.

이는 다른 요인들이 일정하다는 것을 전제로 한 것으로, 예를 들어 원고들이 살아온 생활방식, 출신지나 생활지역, 병력 등 구체적인 변수가 같다고 가정한 채 흡연과 폐암이 인과관계가 있느냐고 본다면 인과관계가 있다고 볼 수 있다는 것이다.

하지만 실제로는 각 개인이 처한 상황이 모두 다르기 때문에 구체적인 상황에서 개별적으로 인과관계를 인정할 수는 없다는 것이 재판부 판단이다.

재판부는 엄격한 증거조사와 법 적용을 통해 판단했을 때 흡연으로 인해 폐암이 직접 유발됐다는 주장 등 원고들이 자신의 주장을 입증하는데 실패했다는 점을 들었다.

하지만 항소심에서 새로운 의학적 판단 등 추가 증거가 제시될 경우 판결이 뒤바뀔 가능성은 있다.

1심 결론이 나오는 데만 7년여의 오랜 기간이 걸린 점에 비춰볼 때 항소심도 상당 기간이 소요될 것으로 보여 국내 첫 담배소송은 `장기 소송'이 될 가능성이 크다.

그러나 기본적인 사실관계는 1심에서 7년여 간 충분히 확인한 만큼 항소ㆍ상고가 이뤄진다고 해도 의외로 그리 긴 기간이 소요되지 않을 것이라는 전망도 있다.

또 양측이 첨예하게 대립하는 만큼 항소심에서 어떤 결론이 나도 대법원까지 갈 수밖에 없을 것으로 보인다.

◇ 입증책임 어디에 있나 = 양측은 흡연과 폐암의 인과관계, 오랜 기간 흡연하면 담배를 쉽게 끊을 수 없는지 등 중독성 여부, KT&G측이 경고 문구 삽입 등을 통해 흡연의 위험성을 알리는 고지(告知) 의무를 다했는지 여부, 제조물책임(PL)법 적용 여부 등의 주요 쟁점을 놓고 열띤 공방을 펼쳤다.

불법행위로 인한 손해배상 청구소송에서는 피해를 입었다고 주장하는 피해자가 가해자의 과실을 입증하는 게 원칙이다.

가해 행위와 손해 발생 사이의 인과관계를 주장하는 쪽(원고)이 입증해야 하는 것이다.

그러나 제조물책임ㆍ의료소송ㆍ공해소송 등의 경우 일반인이 전문가인 의료진이나 거대 기업 등을 상대로 인과관계를 입증하거나 현재의 과학수준으로 해명이 어려운 환경오염 피해를 입증하는 게 매우 어렵다.

따라서 예외적으로 제조물책임ㆍ의료소송ㆍ공해소송 등에서는 원고의 입증 책임을 완화해 피고측이 원인을 유발하지 않았다거나 다른 원인이 있다는 것을 증명하지 못하면 배상 책임을 지도록 하고있다.

이번 담배소송에서도 양측은 입증 책임을 놓고 논박을 벌였다.

원고측은 흡연과 폐암의 인과관계, 제조물로서 담배의 하자에 대한 책임 등은 의료소송ㆍ공해소송 등과 마찬가지로 피고가 입증 책임을 더 많이 부담해야 한다고 주장한 반면 피고측은 일반적인 손해배상 소송과 다를 바 없다며 원고가 구체적 입증을 해야 한다고 맞섰다.

결국 재판부는 이 사안의 경우 일반적인 손배소송의 경우와 마찬가지로 원고측에 입증책임이 있다며 패소 판결했다.

◇ `담배소송 원조' 해외 사례도 도움 = 법원은 사건 처리에서 담배소송이 처음 제기된 미국의 선례를 많이 참고한 것으로 전해졌다.

미국 담배소송의 경우 쟁점을 기준으로 시기상 구분해 크게 3단계 시기로 나뉜다.

1단계(1954∼73년)에서는 흡연과 폐암 등 질환과의 인과관계를 인정할지 여부가, 2단계(1983∼92년)에서는 `담뱃갑에 표시된 경고에도 불구하고 소비자가 위험성을 알면서 피해를 감수하고 흡연했으므로 흡연자에게 더 많은 책임이 있다'는 이른바 `위험감수론' 인정 여부가 쟁점이었다.

1단계에는 인과관계 입증이 안 됐다는 이유로, 2단계에는 담배회사가 흡연의 중독성 및 유해성에 대해 경고했는데도 흡연자가 피해를 감수하고 흡연했다는 이유로 원고가 대부분 패소했다.

그러나 3단계(1994년 이후)에 접어들어 담배회사가 담배의 중독성과 해악성을 연구한 문건이 내부자 고발로 공개되면서 승소 판결이 늘었다.

충분한 연구로 담배의 유해성을 확인한 담배회사가 고의로 니코틴 양을 조작해 흡연자가 중독에 빠지게 한 정황이 드러나면서 담배회사의 고의ㆍ사기로 인한 행위로 볼 수 있는지 여부가 쟁점이 됐다.

이처럼 해외에서는 흡연과 질병의 인과관계, 경고의무 이행 여부, 흡연자의 위험감수, 담배회사의 고의.악의 또는 사기로 인한 행위 여부 등이 주된 쟁점이었고 우리 법원도 해외에서 축적된 선례를 충분히 수집, 검토해 신중히 판단을 내린 것으로 전해졌다.

(서울연합뉴스) 임주영 기자 zoo@yn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