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로벌 스탠더드와 한국적 특수성 중 한 가지를 고집하지 말고 딜레마를 뛰어넘는 해법을 찾는 모순경영(paradox management)을 통해 기업경쟁력을 강화해야 한다는 주장이 제기됐다.

외환위기 이후 정부가 기업경영의 안정성을 지나치게 강조하다 보니 기업의 모험정신을 퇴색시켰다는 지적도 나왔다.

29일 대한상의 국제회의실에서 '한국 경제의 역사적 전환과 도전-20년의 재조명'을 주제로 열린 삼성경제연구소 창립20주년 기념 심포지엄에서 삼성경제연구소 연구원들은 획일화된 정부의 대기업 정책을 강도 높게 비판했다.

홍순영 상무는 "외견상 상호 모순되는 전략이 가장 효과적인 결론을 가져온다는 것이 모순경영의 요체"라며 "한국 고유의 문화와 역사가 담긴 경로의존성(path dependence)을 중시하면서도 글로벌 스탠더드를 충족시킬 수 있는 지혜가 바로 모순경영"이라고 설명했다.

경제의 효율성과 경쟁력,성장과 분배의 조화 등 상충적 목표를 달성하는 방법은 다양하다는 게 홍 상무의 주장이다.

최인철 수석연구원은 기업정신의 퇴색이 경제 체질을 약화시킨다고 강조했다.

그는 "국내 제조업 대기업들은 외환위기 이전까지만 해도 단기 수익률이 마이너스(-)상태에서도 투자했으나 외환위기 직후에는 16.2%의 수익률이 보장되지 않는 한 투자에 나서지 않을 정도로 보수화됐다"고 비판했다.

그는 "외환위기 이후 소비와 투자의 연관성이 단절되면서 거시경제의 불안정성이 심화됐다"며 "수출 확대 역시 소비 증대로 연결되지 못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권순우 수석연구원은 "환율정책만 유연하게 펼쳤어도 외환위기라는 극한상황까지는 가지 않았을텐데,외환위기를 기존 경제시스템의 필연적 귀결로 보고 시스템 전체를 개혁하는 명분으로 삼은 것은 잘못이었다"고 비판했다.

외형적으로는 외환위기를 극복했지만 안정성을 지나치게 강조함으로써 모험활동을 억제해 '과소위험경제'로 이행하게 됐다는 것이다.

김용기 수석연구원은 "기업지배구조 개혁은 미국 제도의 특수성을 일반화시켜 한국에 적용했다는 점에서 교조적이었다"며 "외환위기 이후 구조개혁정책은 한국기업이 지닌 도전적 요소를 제거했다"고 비판했다.

장재철 수석연구원은 "2000년 이후의 약한 내수 성장세가 앞으로 10년간 지속될 경우 우리 경제의 잠재성장률이 연평균 4.6% 수준까지 떨어질 것"이라며 "잠재성장률 회복을 위해서는 가계부채와 주택버블 문제,가계 준조세 부담 가중 등에 대한 대책을 세워 소비와 투자불안 요인을 제거하고 총수요를 늘리는 것이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현승윤 기자 hyunsy@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