金秉柱 < 서강대 명예교수·경제학 >

부자를 도둑으로 보는 사람의 눈에는 최근 보도된 재계 별들의 선행이 놀랍다.

포브지가 선정한 2006년 세계 2위의 갑부 벅셔 헤더웨이 회장 워런 버핏이 그의 재산 중 85%에 해당하는 374억달러(약 36조원)를 자선단체에 기부한다고 발표해 세상 이목을 모았다.

더구나 기부금 대부분을 마이크로 소프트 회장 빌 게이츠가 운영하는 재단에 맡기기로 해 찬탄을 받고 있다.

두 사람은 연령 차이만큼이나 다른 성향을 지녔다.

75세의 버핏은 48년 전 3만1500달러에 매입한 평범한 주택(네브라스카주 오마하 소재)에 줄곧 눌러 살며 철저하게 검소한 생활을 한다.

50세의 게이츠는 캘리포니아의 전망 좋은 해안에 몇년 전 수억달러를 들여 지은 고급주택에 사는 등 호사스럽게 산다.

그러나 이런 갑부들의 생활을 나무라는 비난 여론이 잠잠한 것은 이들의 선행과 무관하지 않다.

게이츠가 2000년 자산규모 300억달러의 자선재단을 설립했고,버핏이 2004년 아내가 사망하자 재산기부를 작심했다.

앤드류 카네기가 "부자로 죽는 자는 수치스럽다"는 말을 남겼듯이,젊은 시절 축재 과정에서 악명을 떨치던 재력가들도 노후에 박애주의자로 변신한 사례가 허다했다.

미국의 유명 대학,도서관,박물관,미술관 등이 그들의 손길 덕분에 건재한다.

조세전문가 의견으로는 금번 기부로 버핏은 30억달러의 소득세감면 효과와 45억달러의 양도소득세 면제 혜택을 얻게 된다고 본다.

과연 버핏답게 간단명료하고 실용적인 계산행위로 볼 수도 있다.

그렇다고 시비 거는 여론도 국세청도 없다.

2006년 세계갑부 5위는 세계최대 철강업체 회장 라크슈미 미탈(56)이다.

그는 인도 라자스탄의 전기시설도 없는 시골에서 할아버지가 손수 지은 집의 시멘트 바닥에서 태어났다.

캘커타에서 아버지의 철강사업을 배운 다음 1976년 인도네시아로 이주해 철강회사 독립 경영 성공으로 발판을 굳혔다.

그 후 미국 폴란드 루마니아 남아공 등 4대륙 14개국으로 뻗어나가 부실 제철회사를 인수해 흑자 전환시키는 귀재를 발휘함으로써 재계 순위 사다리를 단숨에 치올랐다.

2004년 미탈스틸 체제를 굳힌 그는 며칠 전에는 수개월에 걸친 엎치락뒤치락 우여곡절 협상 끝에 드디어 유럽 최대 철강회사 아르셀로를 인수합병하기로 합의를 이끌어내자,경제 애국심을 들먹이던 프랑스 정계도 조용해졌다.

이로써 그는 부자 순위 3위쯤으로 도약할 것이다.

그는 주거지를 아예 런던으로 옮겨 최고급주택가 켄싱턴 패리스 가든즈에 1억달러 이상의 저택에서 호화롭게 살고 있다.

2년 전 딸 결혼식은 베르사유에서 5일간 6000만달러어치 잔치를 흥청망청 벌였다.

부인과 아들이 경영일선에 있다.

이런 지배구조에도 불구하고 미탈스틸의 국제적 사세확장에 거침이 없었다.

라크슈미도 계열 기업소재국에서 기부행위에 열성적이었다.

한국 삼성그룹 회장은 부자순위 82위에 올라있다.

그는 작년 한남동 주택확장 개축으로 언론의 비아냥에 시달렸고 현재 세금관계로 재판에 계류 중이다.

순위 207위의 현대차 정몽구 회장의 주택은 대중매체의 논란 밖에 있다.

그는 양재동 사옥 증축 문제와 비자금 조성 문제로 수감됐다가 엊그제 보석으로 풀려났다.

CEO 수난중에도 노조는 파업을 결행했다.

두 회장은 각각 8000억원과 1조원의 자금을 울며 겨자 먹기로 사회 환원하기로 했다.

내년 포브스지 부자순위에서 이들은 분명 미끄러질 것이다.

이들도 라크슈미처럼 해외로 이주해 드러내놓고 호사스럽게 살 수 있었지 않았을까? 전직 정치인들의 경우 해외부동산 구입 소문이 심심찮지만 한국 재계 거물의 경우 그런 소문이 감감하다. 부자도 개과천선 여지가 있지만 국민들도 고질적 배아픔의 암을 도려내는 환골탈태가 있어야 한다. 나라 밖에서 부자는 선망의 대상,안에선 저주의 대상이다.

그래서 한국 경제는 크지 못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