투자은행 골드만삭스와 패스트푸드 업체 맥도날드에 이르기까지 일은 안하고 TV를 보거나 몰래 웹사이트를 뒤지는 근로자들이 최근 부쩍 많아졌다.

근로자들이 근무시간에 `담배를 피우러 간다'며 자리를 비우는 시간이 길어졌고, 심지어는 축구를 보기 위해 결근을 하기도 한다.

그동안 다른 나라에 비해 월드컵이 상대적으로 큰 인기를 끌지 못하던 미국에서도 월드컵 열기가 젊은 층을 중심으로 마침내 `임계질량(핵분열 물질이 연쇄 반응을 일으킬 수 있는 최소의 질량)'에 도달했다고 월스트리트 저널이 13일(현지시간) 보도했다.

미국과 체코의 경기가 열린 지난 12일 도이체방크 뉴욕 사무실내 TV 모니터 가운데 중역실의 것을 포함, 절반 이상은 월드컵 경기에 채널이 맞춰져 있었다.

또 JP모건체이스의 TV도 절반은 재정금융 뉴스 채널에, 나머지 절반은 월드컵 경기 채널에 공평하게 나뉘어 있었고, 근로자들은 책상위에 각국의 소형 국기를 진열해 놓고 있었다.

여론조사기관인 `넬슨미디어리서치'에 따르면 4년전 한일 월드컵 당시 브라질과 독일간 결승전을 지켜본 미국인은 모두 390만명으로 전세계 시청자 11억명의 극히 일부에 지나지 않았다.

그러나 올해 독일 월드컵의 경우 조별 예선임에도 불구, 첫 경기부터 8번째 경기까지를 시청한 미국인이 게임당 평균 260만명으로, 첫 8경기를 지켜본 미국인이 게임당 평균 90만명에 그쳤던 2002 월드컵에 비해 3배로 늘었다.

미국 기업들이 점점 더 국제화되고 더욱 더 많은 외국인 근로자들을 채용하면서 마침내 미국내에서도 축구 인구가 형성되고 있기 때문이다.

특히 올해의 경우 총 64개 경기 가운데 대부분의 경기가 미국내 동부와 서부 양쪽에서 심야 시간대가 아닌 오전 9시부터 오후 5시 사이에 치러진다는 점도 축구 열기 확산에 기여하고 있다.

시애틀에 사는 딜런 위뱅크스는 지난 12일 미국대 체코전을 보기 위해 결근을 했다면서 결근 이유는 축구를 보기 위해서라고 실토하더라도 경영진이 이해해 줄 것으로 믿는다고 말했다.

샌디에이고의 인터넷보안회사인 버나드 소프트웨어가 250개 이상의 회사들을 상대로 조사한 결과 전체의 15%가 근로자들이 업무에 전념하도록 월드컵과 관련된 인터넷 콘텐츠를 사전 차단한 것으로 나타났다.

그러나 근로자들의 사기를 높여주기 위해 플라스마 TV세트를 구매해서 함께 보도록 하거나 근로자들의 TV 시청을 모른체 하는 회사들도 있고, 월드컵을 계기로 매장내 TV 시설을 개선하는 패스트푸드점도 있었다.

컨설팅업체 `챌린저, 그레이 앤 크리스마스'의 존 챌린저 CEO(최고경영자)는 인터넷을 통해 경기를 보는 팬들이 크게 늘어나면서 올해 월드컵은 미국 근로자들의 생산성에도 위협적 요인이 되고 있다고 말했다.

월드컵 열기로 인한 생산성 손실은 영국에서만 40억 파운드(약 75억 달러)에 달할 것이라는 분석도 나오고 있다고 월스트리트 저널은 덧붙였다.

(뉴욕연합뉴스) 이래운 특파원 lrw@yn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