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준형 < 서울대교수·공법학 > 지난 18일 양극화 문제의 해법으로 일자리 창출과 함께 재정확대의 필요성을 강조한 노무현 대통령의 신년연설은 잠시 잠복해 있던 증세 논란을 재연시켰다. 보수언론들이 세금을 올리겠다는 이야기라며 공격을 해대자, '정부가 증세를 얘기한 적은 없고 다양한 재원조달 방안을 검토하고 있다'는 해명이 나왔지만 '까마귀 날자 배 떨어지듯' 국세청은 표본조사란 이름 아래 반도체·전자·조선·자동차 등 매출 300억원 이상 116개 대기업에 대한 세무조사에 들어갔다. 투자 심리에 의해 움직이는 증시는 맥없이 '검은 금요일'의 나락으로 추락하고 말았다. 인과관계야 어떻든 이 일련의 사태를 지켜보는 사람들의 마음은 어둡고 우울하다. 대통령 스스로 뿌듯한 표정으로 밝혔던 것처럼 모처럼 되살아나던 경제가 다시 발목을 접질리는 건 아닌지,진의야 어떻든 세금을 올리는 건 아닌지,앞날이 뒤숭숭할 따름이다. 왜 이런 일이 일어나는 것일까. 무엇이 문제였나. "아이 키울 걱정 없고,일하고 싶을 때 일할 수 있고,건강과 노후가 보장되는 사회"를 만들겠다는 데 반대할 사람은 없지만 그 비용을 부담하라면 고개를 돌리게 마련이다. 하물며 당장 세금이라는 형식으로 국가와 마주하고 있는 기업의 입장에서는 그러잖아도 노사갈등 등 기업환경이 어려운데 어쩌자는 건지 짜증이 날 수밖에 없을 것이다. 사정은 으레 그렇게 마련이다. 대통령이 새해 벽두에 신년연설이란 형식으로 국민에게 국정의 현황과 운영 방향을 밝히는 모습은 자연스럽다. 대통령 자신의 생각과 철학,비전,그리고 그것을 위한 준비와 고뇌를 내비쳤다는 점에서 아름답기도 하였다. 대통령이 자기 임기에 구애 받지 않고 국가의 원대한 미래를 위한 의제를 제기하는 것,그 하나로 양극화 문제의 심각성과 해소방안을 강조한 것도 극히 온당한 처사였다. 그런데 시장은 왜 그렇게 반응했던 것일까. 이유는 단순하다. 불확실성과 모호함 때문이다. '책임 있는 자세로 미래를 대비하자'는 대통령의 고뇌어린 제안은 그것이 국민이나 기업에 어떤 현실적,구체적 결과를 가져올지를 명확히 하지 않음으로써 예측가능성을 낮추고 불확실성을 높였다. 급기야 "기존 예산을 아껴쓰고 구조조정을 하는 걸로는 한계가 있으니 근본적으로 해결책을 찾아야 한다"고 한 대목에서는 증세밖에 더 있겠느냐는 추론과 의혹을 낳았다. 그런 맥락에서 나온 국세청의 행보는 그 진의가 무엇이었든 간에 '근본적 해결책'이란 결국 세금탈루에 대한 대대적 제재와 세금환수 등 대기업들의 주머니를 쥐어짜는 식의 조치들일 것이라는 해석을 뒷받침했다. 결국 신년연설이 담았던 모호함과 불확실성이 경제에 관한 이중적이고 모순적인 시그널로 바뀌어 읽혀버린 것이다. 양극화 문제의 해결책을 이야기하려 했다면 후속 발표 등을 통해 '근본적 해결책'이란 게 무엇인지 분명히 제시했어야 했다. 거기에 부동산소득 등 불로소득 과세 확대,탈루세원의 포착을 통한 세금환수 등 세수보완조치 외에 증세면 증세,세제개혁이면 개혁 등이 언제 어떻게 얼마나 포함되어 있는지를 밝힐 수 있을 만큼 정책설계에 만전을 기했어야 했다. 나아가 양극화 해소를 위한 일자리대책,사회안전망 구축,미래대책을 해나가기 위해 많은 재원이 필요하다면 어느 부문에 얼마나 언제까지 필요한지 별도로 소관 부처의 정책브리핑을 통해 밝혔어야 했다. 대통령의 말 한 마디 한 마디가 중요하다는 이야기는 이미 너무 진부해져 버렸지만,그 어느 한 마디가 진의에 맞게 제대로 읽히려면 엄중한 준비과정이 필요하다. 장기계획이나 전망,철학,비전처럼 기간이 길거나 추상성이 높은 정책 의제라고 해서 명확성의 요구에서 면제된다고 생각하면 큰 오산이다. 한 마디 한 마디가 막중한 대통령의 말인 경우에는 더욱 더 그렇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