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대중 정부 시절 국정원 국내담당 2차장으로 재직하면서 도청을 지시한 혐의로 구속영장이 청구된 김은성씨는 8일 "국가통치권 보존 차원에서 관행적으로 도청했을 뿐 정치사찰 목적은 아니었다"고 주장했다. 이에 따라 국정원의 도청이 관행이라는 명분 아래 오래전부터 조직적으로 이뤄졌을 것이라는 의혹이 증폭되고 있다. 김씨는 이날 오전 서울중앙지법 박철 영장전담부장판사 심리로 열린 영장실질심사에서 변호인 신문에 이같이 답했다. 그는 이어 "불법 도ㆍ감청을 근절하지 못한 책임을 절감하지만 도청은 전임자들에게 이어 받은 것이고 내가 없애자고 할 위치도 아니었다"고 밝혀 국정원의 도청 실태를 국정원장 등 윗선에서 인지하고 있었음을 내비쳤다. 김씨는 또 "임동원, 신건 전 원장과 2~3차례 만났지만 국민 앞에 석고대죄하는 심정으로 사과하자고 제의했을 뿐 증거인멸을 시도하지는 않았다"고 말했다. 김씨는 자신이 도청의 배후로 지목된 것과 관련, "불법 도ㆍ감청에 의존하지 말고 발로 뛰는 정보 수집을 독려했다"며 직원들에게 도청을 독려했다는 의혹을 부인했다. 검찰은 김씨가 전임자들처럼 관행적으로 도청을 했다고 주장함에 따라 국정원 차장과 원장을 지낸 신건씨와 원장을 지낸 이종찬, 천용택, 임동원씨도 조만간 소환해 도청 지시를 했거나 도청물 내용을 보고받았는지 여부를 조사할 방침이다. 검찰은 또 도청 내용이 변형된 보고서 형태로 국정원 외부로 유출돼 정치권 인사들에게 건네졌는지 등에 대한 의혹도 김씨의 신병처리가 결정된 뒤 집중 조사할 방침인 것으로 전해졌다. 검찰은 이와 관련, 2002년 국정원 `도청문건'을 입수했다고 의혹을 제기한 정형근 한나라당 의원과 김영일, 이부영 전 의원도 조만간 소환조사할 계획인 것으로 알려졌다. (서울=연합뉴스) 이광철 기자 minor@yn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