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달 7일의 이집트 대선을 앞두고 선거전이 서서히 달아오르고 있는 가운데 5선(30년 집권)에 도전하는 호스니 무바라크 대통령의 집권 프리미엄이 논란을 빚고 있다. 무바라크는 후보를 낸 정당에 정부가 지원하는 50만 이집트 파운드(약 1억원)의 선거자금도 거부한 채 후원금 등으로 선거운동을 벌이고 있다. 그러나 사상 첫 경선으로 치러지는 이번 이집트 대선 과정에서 무바라크의 집권 프리미엄이 너무 강하게 작용해 일각에선 `무늬만 경선'이라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경제단체-종교계 잇단 무바라크 지지 선언 = 이집트에서 상당한 영향력을 행사하는 경제단체인 투자자협회(GDI)는 지난 22일 모임을 갖고 무바라크 지지를 선언했다고 현지 언론이 보도했다. 협회측은 무바라크가 공약으로 내놓은 경제 프로그램들이 현실성이 있다면서 무바라크의 새 임기 중에 협회 차원의 역할을 더욱 확대해 공적 책임을 다하겠다고 밝혔다. 모하메드 아불-에니엔 투자자협회 회장은 "기업들이 그동안 이룩한 성과는 무바라크 대통령의 친기업 정책에 따른 것"이라며 재계의 무바라크 지지를 강조했다. 모하메드 알-마스리 이집트 상공회의소 부회장도 무바라크 정부가 외환보유고를 190억달러 수준으로 늘려놓고 기업들의 투자 안정성을 높이는 정책을 추진했다며 무바라크 손을 들어줬다. 무바라크 지지 행렬에는 이슬람 지도자도 가세했다. 이집트 내 이슬람 최고 권위기구인 알-아즈하르의 수장인 셰이크 모하마드 사이드 탄타위는 알-마스리 알욤 신문과의 회견에서 "우리는 무바라크를 지지하기 위해 모든 수단을 강구할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일부 야당이 투표 보이콧 움직임을 보이는 것에 대해 이슬람법 샤리아는 국가 중대사인 선거에 참여할 것을 요구한다며 투표불참자들은 종교적으로 비난받을 것이라고 주장했다. 이에 대해 현지 정치분석가들은 정치적으로 중립을 지켜온 알-아즈하르의 최고 지도자가 무바라크 지지 입장을 공개적으로 밝힌 것은 극히 이례적인 일이라고 지적했다. ◇거리를 독점한 무바라크 지지 홍보물 = 선거 분위기가 무르익고 있는 카이로 시내의 거리는 무바라크 초상화를 넣은 집권 국민민주당(NDP)의 선거 홍보물이 점령하고 있다. 야당의 강력한 다크호스로 떠오른 아이만 누르 알-가드당 대표의 활동 기반이어서 누르 후보 지지자들이 많이 사는 바브 샤리아 거리도 무바라크 지지 포스터가 덮고 있다. 카이로 시내 기자 동물원과 경찰서 주변의 거리도 거의 예외없이 요지에는 무바라크 홍보물이 점령하고 있으며, 야당 후보들의 포스터는 구석으로 밀려나 있다. 알-아흐람 정치전략연구소의 아므르 알-쇼바키는 이와 관련, 사상 첫 경선으로 치러지는 이집트 대선이 경쟁이 별로 없는 그런 선거로 전락하고 있다고 비판했다. ◇TV토론 요구 목소리 점증 = 무바라크 대통령은 지난달 연쇄 폭탄테러가 발생했던 샤름 엘-셰이크에서 26일 국민과의 대화를 갖기로 하는 등 막강한 자금력을 바탕으로 오프라인 공간에서 유권자들과 활발하게 접촉하고 있다. 반면에 정부의 한정된 지원금과 당원들의 소액 기부금만으로 선거를 치러야 하는 야당은 돈이 많이 들어가는 대중집회에 크게 의존할 수 없어 애를 태우고 있다. 야당들은 그 대안으로 많은 유권자를 접촉하는 효율적 수단인 TV토론을 요구하고 있지만 여당측은 10명의 후보가 나오는 TV 토론은 무의미하다는 이유로 거부하고 있다. 이에 대해 한 소식통은 "무바라크 대통령은 연설문을 바탕으로 한 대중연설에는 강하지만 토론에는 약한 편"이라며 "여당이 TV토론을 받아들일 가능성은 별로 없다"고 말했다. ◇무바라크 당선 전망 우세 = 24년간 집권해 온 현 대통령과 사상 첫 경선을 치르는 9명의 야당 후보들이 고군분투하고 있지만 야당 후보들의 뚜렷한 약진은 아직 나타나지 않고 있다. 일부 관측통들은 선거운동이 종반전으로 치닫는 내주부터는 야당 후보들의 바람몰이가 본격화할 것으로 예상했지만 현재의 분위기론 전체 야당 후보들이 과반 득표를 해 결선 투표로 이어지는 이변이 연출되긴 힘들다는 관측이 우세하다. 실제 국가공보처 산하의 나일선거연구센터가 지난 13∼20일 카이로 주변에 거주하는 유권자 400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여론조사 결과 응답자의 89.2%가 무바라크의 당선을 예측했다. 이런 가운데 알-와프드당의 노아만 고마 후보가 29.5%의 지지를 얻어 야당 후보 중에서 선두를 달렸고, 다음으로는 알-가드당의 아이만 누르 후보가 9.1%를 득표할 것으로 예상됐다. 나머지 후보들은 2% 안팎의 미미한 지지율을 기록했다. (카이로=연합뉴스) 박세진 특파원 parksj@yn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