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영봉 < 중앙대 교수·경제학 > 헝가리 경제학자 코르나이(J. Kornai)의 '부족의 경제학(Economics of Shortage,1980)'은 국가명령체제의 문제를 적나라하게 보여주는 책이다. 공산주의 국가에서는 모든 물자가 부족하다. 국가계획당국이 기업에 생산목표량을 명령하고,기업은 생산실적 채우기만 몰두한다. 시장가격과 비용개념이 없으므로 투입물자가 얼마가 들어가는 것은 관심 밖의 일이다. 가격이 무의미한 소비재는 국영상점에 나오는 대로 소비자가 몇 시간씩 기다리며 다 사간다. 물자부족 노이로제에 걸린 경제주체들은 사재기(hoarding)하는 것이 본능이 된다. 문제는 부족경제가 심해질수록 그 원인자인 당국은 더 정당해지고 할 일이 많아진다는 것이다. 물자 부족에 대처하자니 정부는 더욱 명령 및 계획해야 하고 기업활동을 직접 챙겨야 한다. 자원과 에너지를 얼마를 낭비하든 모든 투자나 개발이 합리화된다. 관리들은 대형사업 집착증(Pyramid complex)에 빠져 거대한 사업을 한없이 만들어낸다. 당국이 병(病)을 만들고 병자가 늘어날수록 돌팔이의 위세가 커지는 격이다. '부족의 경제학'은 오늘날 한국에서 기막히게 재연(再演)되고 있다. 참여정부 하에서 부동산 투기가 전국을 휩쓸고,정부는 이와 싸우느라 바쁘다. 정부가 수도이전,혁신도시 개발,공공기관 이전 등 국토를 뒤바꾸는 대형 개발사업을 마구 토해내고 있으니 전국이 투기장이 되는 것은 너무도 당연하다. 도시,기업과 기관이전이 지정된 곳마다 돈이 풀리고 개발기대가 넘치고 투기가 찾아온다. 땅값이 몇 배로 뛰니 아파트도 뛸 것이고,뒤따라 다른 곳도 가격격차를 줄이려 뛰니 투기광풍이 전국을 돌며 쓸어대는 것이다. 현 정부는 정권을 내놓는 날까지 투쟁하고 매도할 대상을 스스로 발굴한 셈이다. 정권당국은 부동산투기와 사생결단을 외치지만,공공기관 이전 등을 재고할 생각은 물론 없다. 이제 당국은 헌법같이 무거운 무적의 방패(盾)를 설치하겠다고 한다. 하지만 그들이 추진하는 도시건설과 기관이전은 투기전선에서는 막을 자가 없을 창(矛)인 것 같다. 대통령이 정말로 "전 세계 부동산가격이 다 올라도 한국은 안 된다"는 생각이라면 상충(相衝)하는 다른 정책은 포기해야 옳다. 한쪽으로는 불을 활활 지펴가며 다른 쪽으로는 칼을 휘둘러 불을 끄겠다면 여기서 어떤 정책신뢰도를 발견하겠는가. 정부는 '손대기'보다는 '손떼기'를 통해 더 많은 효과를 볼 것이다. 세 가지의 예만 보자. 첫째,행정수도나 공공기관 이전은 오늘날 부동산 투기의 소굴이 되고 있다. 정부 계획대로라면 2012년까지 이전비 개발비 보상비가 계속 풀리고,이에 부동산 투기수요가 가세할 것이다. 수만명의 기러기 아빠가 생기면 그 만큼 주거수요가 늘어날 것이다. 정부가 이 계획에서 손을 떼는 만큼 투기의 불길이 잡힐 것은 불 보듯 뻔한 일이다. 둘째,강남 집값을 올린 주범은 고교평준화 정책이었다. 과거 분당 일산 지방도시 등이 고교비평준화지역에서 해제되자 주민들은 명문학원이 즐비한 강남으로 몰려왔다. 만약 중앙정부가 평준화교육에서 손을 뗀다면 전국의 모든 지방자치조직이 경쟁력 있는 교육시설 도입에 힘쓸 것이다. 교육수요 분산은 주거수요를 분산시키고 투기수요를 잠재울 것이다. 셋째,당국의 판교개발정책은 분당 용인 등 주변지역의 주택가격에 불을 붙이는 도화선이 됐다. 분배적 개혁정책을 공연히 주택정책과 혼합한 탓에 양질의 주거자원은 낭비되고 소비자의 실망만 키웠다. 정권은 보다 정직해져야 한다. 부동산 투기 불식을 원하는 것인가,아니면 세력교체 분배 평준화를 원하는 것인가. 스스로 찌르고 스스로 막으며 와중에 정치적 빌미와 선전거리를 찾는 일은 이제 그만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