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크본드 신세로 추락한 미국 자동차 업계가 지난 90년대의 `황금거위'였던 스포츠유틸리티차(SUV)의 영광을 되살리기 위해 안간힘을 쓰고 있으나 정작 현실은 SUV `거품 붕괴'를 우려해야하는 암울한 상황으로 이어지고 있다고 아시안 월스트리트 저널이 13일 분석했다. 여기에 설상가상으로 도요타가 SUV 시장공략 강화를 위해 새로운 해외생산 전략까지 채택해 제너럴 모터스(GM)와 포드의 어려움을 심화시키고 있다는 진단도 나왔다. 저널은 GM과 포드의 채권이 투기등급까지 떨어진 주요 원인으로 과중한 경영 부담을 이들이 하소연하지만 정작 핵심은 SUV 쪽 부진이라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GM과 포드가 쉬쉬하고 있으나 근자의 판매 추세가 이를 뒷받침한다고 강조했다. 저널은 미국 자동차 산업 본거지인 디트로이트 인근 소재 미시간대 수송연구소(UMTRI) 보고서를 인용해 GM과 포드의 SUV 판매 마진이 급락했으며 매출도 다른 부문에 비해 크게 떨어진 것으로 추정된다고 전했다. 자동차 메이커의 모델별 매출과 수익 실적은 1급 대외비라고 저널은 강조했다. 보고서에 따르면 한 예로 GM의 핵심 SUV 모델인 시보레 서버반의 경우 지난 2001년 대당 판매수익이 약 9천500달러이던 것이 지금은 6천300여달러로 떨어졌다. 포드의 인기 모델인 익스플로러도 7천200달러 가량에서 약 4천100달러로 급감한 것으로 추정됐다. GM이 공개한 지난 1.4분기 실적은 차량당 매출 실적이 전체로 4% 가량 떨어진데 반해 SUV 핵심 모델들의 경우 평균 하락률이 무려 20%가 넘음을 보여줬다고 저널은 지적했다. SUV 거품 붕괴를 걱정해야 하는 이유가 자명하다는 얘기다. UMTRI의 월터 맥매너스 애널리스트는 저널에 "상황이 이렇게 악화됐는데도 GM과 포드는 여전히 SUV에 크게 의존하고 있다"면서 스탠더드 앤드 푸어스(S&P)가 지난주 GM과 포드 채권을 정크본드로 떨어뜨린 배경에 이 점이 크게 작용했다고 말했다. 맥매너스는 이른바 `빅 3'로 불리는 GM과 포드, 그리고 다임러크라이슬러의 크라이슬러 부문의 핵심 파트인 중대형 SUV 쪽 총수익이 지난 2001년에 비해 작년 기준으로 근 70억달러 감소했다는 것이 연구소의 추정치라고 강조했다. 저널은 이런 악조건을 타개하겠다는 GM과 포드의 전략도 판이하다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불행히도 공통점은 전망이 밝지 않다는 것이라고 덧붙였다. 포드의 경우 지난 2003년 순익이 고작 1억6천500만달러로 당시까지 최저치로 폭락하자 중대형 SUV 시장이 `포화'됐다고 판단하고 은퇴를 코앞에 둔 대규모 베이비붐 세대를 겨냥해 스테이션 왜건으로 더 잘 알려진 `크로스오버차' 시장에 주력할 것이라고 밝혔다. 중대형 SUV가 승용차보다는 트럭 쪽에 가까워 승차감이 떨어지는 등의 단점이 있는 것을 보완한다는 개념이다. 저널은 포드가 야심차게 내놓은 C1 프로젝트를 상기시키면서 볼보와 마쓰다 등의 스테이션 왜건을 겨냥했으나 회사측이 주장하는 만큼의 성과를 냈는지는 의문이라고 평가했다. 반면 GM은 `내년에 SUV 시장이 되살아 난다'는 쪽으로 `도박'하고 있다고 저널은 분석했다. 고유가 시대로 접어들기는 했으나 고급 SUV 시장은 갈수록 확대될 것으로 판단한다는 얘기다. GM이 핵심 모델인 서버반과 유콘의 연비를 높이고 승차감을 높이는 쪽으로 고급화해 승부한다는 전략을 앞세우고 있음을 저널은 상기시켰다. 그러나 현실은 GM이 기대한 만큼이 아닌 쪽으로 이어지고 있다고 저널은 지적했다. 리처드 왜고너 GM 회장겸 최고경영자가 최근 저널 회견에서 "SUV 시장이 기대한만큼 회복되지 않고 있다"고 실토한 점을 상기시켰다. 자동차마케팅 전문기관인 오토퍼시픽의 제임스 홀 애널리스트는 저널에 "GM과 포드가 SUV 영광 회복에 안간힘을 쓰고 있으나 시장이 전처럼 단순하지 않다"면서 "크로스오버 시장을 유럽과 일본 메이커들이 확고하게 장악하고 있음이 현실"이라고 강조했다. 저널은 지난달 SUV 부문 톱 12개 모델이 모두 일본과 유럽차였음을 상기시키면서 혼다와 BMW의 경우 승용차와 미니밴의 부품을 개량해 크로스오버 쪽에 사용함으로써 생산성을 상대적으로 높이고 있는 상황이라고 지적했다. 이와 관련해 월스트리트 저널은 12일자 부에노스 아이레스발 '도요타의 신흥시장 전략을 주목하라'는 분석 기사에서 도요타가 GM을 제치고 명실상부한 세계 1위 메이커로 부상하기 위해 해외생산 전략을 근본적으로 수정했다고 소개했다. 즉 그간은 품질 유지를 위해 엔진과 프레임 등 핵심 부분은 일본에서 생산해 해외에 공급하는 방식을 취했으나 엔고 등을 감안해 과감하게 해외 쪽으로 이동시키는 새로운 방식을 도입했다는 것이다. 저널은 도요타가 SUV 시장을 본격 공략하기 위해 내놓은 하이럭스 모델이 대표적인 사례라면서 이를 통해 지난해말 현재 12%인 세계시장 점유율을 2010년까지 15%로 끌어올린다는 목표를 갖고 있다고 소개했다. 도요타는 핵심부품 생산 해외이전과 관련해 일본의 자유무역협정도 최대한 활용하고 있다고 저널은 덧붙였다. 블룸버그는 미국 자동차 산업의 상징인 디트로이트가 GM과 포드의 정크본드 추락에 뒤이어 신용등급이 두단계나 떨어져 BBB+로 간신히 체면을 유지한 상황임을 상기시켰다. 미국과 일본의 `자동차 전쟁'이 갈수록 `부익부 빈익빈' 국면으로 이어지지 않겠느냐는 것이 자동차업계를 바라보는 전문가들의 전망이다. 그 틈에 끼어있는 우리나라 자동차 산업도 심정이 착잡할 수 밖에 없다. (서울=연합뉴스) 선재규 기자 jksun@yn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