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붙이고! 허리 낮추고! 또 틀리면 20바퀴 도는거야!"


25일 오후 6시. 밖에는 한낮 기온이 섭씨 20도를 넘는 화창한 봄날이 이어지고 있지만 서울 중계동 근린스케이트장 실내링크에서는 한겨울 삭풍만큼이나 매서운 코치 선생님의 호령앞에서 '꼬마 선수'들이 숨가쁘게 얼음을 지치고 있었다.


그런데 링크 한가운데서 두꺼운 겨울옷을 입고 초시계를 들여다보는 코치의 얼굴이 너무도 낯이 익다.


가만히 들여다보니 연예인 빰치는 외모로 방송광고까지 찍었던 한국 국가대표 쇼트트랙의 간판스타 김동성(26)이었다.


지난 2월 제86회 전국 동계체전 쇼트트랙 500m 경기를 마지막으로 18년을 함께 했던 유니폼을 벗고 은퇴를 선언한 김동성이 미래의 쇼트트랙 유망주를 키우는 '코치 선생님'으로 변신한 것.

김동성의 직책은 근린스케이트장 교육팀장. 세계선수권대회 6관왕의 타이틀을 거머쥐었던 김동성의 '유명세'로 볼때 어울리지 않는 '옷'처럼 느껴질 수도 있다.


하지만 김동성은 "내 나이 또래에서 가장 늦게 (지도자로) 뛰어 들었지만 대우는 가장 좋을 것"이라며 유쾌한 웃음으로 받아 넘겼다.


김동성은 지난 12월부터 중계동 근린스케이트장 교육팀장으로 임명돼 5살 꼬마부터 중년의 직장 동호회원들까지 쇼트트랙의 매력에 빠진 마니아들을 지도하고 있다.


교육팀장을 맡은 지 얼마되지 않았던 지난해 12월말에는 북부교육구청배 쇼트트랙 대회에 제자들을 이끌고 출전해 '지도자 데뷔전'을 치르기도 했다.


가르침을 받는 입장에서 가르침을 주는 지도자로 변신한 김동성은 머릿속에 어떤 구상을 그리고 있을까.


"처음에는 무작정 잘 될줄만 알았는 데 그렇지 않더라구요.


그래도 이제 5개월째되니 나만의 지도 스타일이 나오는 거 같아요"라고 수줍게 대답했다.


초보 지도자의 걸음마를 막 뗀 김동성은 지난 2월 스스로 내린 은퇴결정에 대해 후회한 적이 없단다.


김동성은 "무릎을 굽힐 때마다 뼈끼리 부딪히면서 '뿌드득'하는 소리가 들려요.


이런 몸으로 무리하게 2006 토리노올림픽을 준비하다가 대표선발전에서 떨어진 뒤 은퇴를 결정하게 된다면 스스로가 견디지 못했을 거예요"라고 담담히 대답했다.


쇼트트랙 선수로서의 명예는 메달리스트로 만족한다는 것. 특히 8개월째로 접어든 신혼생활과 가장으로서의 책임도 다하기 위해 은퇴를 결정했다.


김동성은 "오는 10월에 아빠가 되는 데 대표선수를 계속했다면 태릉선수촌에 입촌하느라 가족들과 생이별을 했을 거 아니예요.


지금은 차곡차곡 내 자신의 미래를 준비해야될 때라고 생각해요"라고 강조했다.


임신 5개월째에 접어든 와이프의 임신소식을 전하는 김동성의 얼굴은 수줍지만 강한 책임감이 뭍어났다.


김동성은 "그동안 스케이트만 탓지 주변이 어떻게 돌아가고 있는 지 몰랐어요.


코치로서의 역할뿐아니라 스케이트장 운영의 실무도 익히면서 경제적인 감각도 키우고 싶습니다"고 설명했다.


쇼트트랙 지도자뿐 아니라 멀지 않은 훗날 스포츠센터의 경영자로서의 청사진도 그리고 있는 것.

기회가 닿으면 이준호 전 대표팀 감독처럼 해외로 진출해 한국 쇼트트랙의 기술력을 전하고 싶은 소망도 키우고 있다.


최근 불거졌던 쇼트트랙 여자대표팀 구타문제에 대한 김동성의 생각을 물어보자 "전 맞으면서 배운 적이 없어서..."라며 말끝을 흐렸다.


하지만 "다른 사람을 가르치기 시작하면서 부터 감독들이 왜 손찌검을 하게 되는지 느끼게도 됐지만 솔직히 구타는 싫어요"라고 강조했다.


선수촌 퇴촌명령을 받은 남자쇼트트랙 대표팀에 대해선 "한국 쇼트트랙이 세계무대에서 무너지지 않으려면 '작전구사'가 필수적인 데 어쩔 수 없이 몇몇 선수들이 피해를 보기 마련"이라며 "하지만 계주에서 만회가 되는 만큼 코칭스태프와 선수간에 긴밀한 이해가 필요한 것 같이요"라고 덧붙였다.


10월에 태어나는 2세에게도 운동을 시킬거냐는 질문에 김동성은 "특별히 운동을 시키고 싶지는 않아요.


하지만 뭐든지 하고 싶다면 끝까지 밀어줄 작정입니다"고 예비아빠의 심정을 솔직히 전했다.


(서울=연합뉴스) 이영호기자 horn90@yn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