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와대는 5일 독도영유권을 주장하는 내용의 일본공민교과서가 문부과학성 검정을 통과한데 대해 특별한 반응을 보이지 않은 채 평정심을 유지, 청와대의 대일 외교기조가 `지구전'에 들어간 것이 아니냐는 관측을 낳고 있다. `울트라 보수'로 불리는 이시하라 신타로(石原愼太郞) 도쿄도지사가 노 대통령의 대일 비판을 `인기회복책'으로 치부하는 등 상대국 국가원수에게 `비례(非禮)'를범한데 대해 청와대가 "대꾸할 가치가 없다"고 일축한 대응의 연장선상이다. 특히 일본의 유엔 안전보장이사회 상임이사국 진출시도와 관련해 중국에서 대규모 군중시위가 벌어지는 등 반일정서가 드센 상황을 감안할 때도 청와대의 스탠스는 이런 분위기에 전혀 좌우되지 않는 `냉정함'을 유지하고 있는 셈이다. 노무현(盧武鉉) 대통령이 지난달 23일 `국민에게 드리는 글'을 통해 일본의 과거사 정당화 시도와 패권주의 기도에 대해 시정을 요구하는 등 `직설화법'으로 일본을 겨냥했던 것과는 달라진 분위기이다. 이는 노 대통령이 같은 글에서 "이 싸움은 하루 이틀에 끝날 싸움이 아니다"며 사실상 `지구전'을 감수하겠다는 입장을 덧붙인 것과 맥이 닿아 있는 것으로 보인다. 노 대통령은 당시 "어떤 어려움이라도 감수하겠다는 비장한 각오로 임하되 체력소모를 최대한 줄일 줄 아는 지혜와 여유를 가지고 끈기 있게 해나가야 한다"고 상기시킨 바 있다. 즉 노 대통령은 자신의 대일 메시지가 이미 충분히 일본에 전달된 것으로 판단하고 일본의 교과서 문제 등 단발성 사안에 대해서는 즉자적 대응을 하지 않겠다는의지를 보이고 있는 것으로 봐야한다는 지적이다. 이런 노 대통령의 `계산된 침묵'이 청와대의 `무반응'으로 나타나고 있는 것으로 볼 수 있다. 그러나 청와대의 `침묵과 관용'이 언제까지 계속되리라고 보기는 어렵다. 이런점에서 이달 중순 노 대통령의 독일방문을 주목하는 분위기가 조성되고 있다. 청와대는 제2차 세계대전 패전국인 독일과 일본이 과거사를 대하는 차이점을 부각시킴으로써 일본에 철저한 자기반성과 함께 과거사청산을 우회적으로 재촉구하는메시지를 검토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김만수(金晩洙) 청와대 대변인은 "일본과 독일의 과거사 청산방식에 관한 비교를 통해 한일관계의 현상황에 대한 언급이 있을 수 있다"고 말했다. 그러나 노 대통령의 언급이 `제2의 베를린선언' 같은 형식을 띠지는 않을 것으로 보인다. 청와대 핵심 관계자는 "베를린선언 같은 식으로 대통령에게 올라가는 보고서는 하나도 없다"고 잘라 말했다. 관계자는 "독일 방문은 최근의 한일현안이 불거지기 이전에 결정된 일"이라며 "사실 대통령이 국제사회에 대해 연설을 할 만한 장소가 없고, 외국 방문의 성격상외교적으로 그럴 여건이 못된다"고 말했다. 그는 일본의 유엔 안전보장이사회 상임이사국 진출 문제에 대해서도 "이제껏 밝혀오지 않았느냐"고 말해 이와 관련된 별도의 언급도 없을 것임을 시사했다. 다만 독일과 일본은 모두 패전국이었으나, 독일은 말끔한 나치역사의 청산을 통해 나름대로 유엔 안보리 상임이사국 진출을 위한 국제사회의 호응을 얻고 있는 반면 일본은 가까운 이웃으로부터도 상임이사국 진출과 관련해 반감을 사고 있는 점을자연스럽게 일깨워준다는 것이다. 청와대는 이처럼 한일 현안에 대해 차분하고 냉정한 대응 기조를 유지하고, 특히 독도와 교과서 문제를 분리 대응한다는 전략적 방침을 이어갈 것으로 예상된다. 한 핵심 관계자는 "독도 문제는 원칙적으로 단호하게 대처하나 일본 교과서 문제는 교과서 채택 및 이후 과정까지 대응 프로세스(절차)가 있다"고 말했다. 청와대가 대통령의 3.23 서신 발표 이후 `바른역사기획단' 설치 등 대응 및 관리시스템을 구축하는 것외에 한일 현안에 대한 직접적 개입을 자제해온 것도 이런판단이 작용했다는 것이다. 이 관계자는 "곧 있을 한일외무장관 회담 결과 등 앞으로 여러 상황을 종합적으로 보고 판단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말했다. (서울=연합뉴스) 김재현기자 jahn@yn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