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특구인 인천 송도신도시에 있는 미국 제약회사 백스젠과 한국의 KT&G 등의 합작회사인 바이오 신약회사 셀트리온.이 회사 임원인 미국인 J씨(52)는 하루 4시간을 출퇴근길에서 보내는 고역에도 불구하고 서울 한남동에 살고 있다. J씨가 이런 고생을 할 수 밖에 없는 까닭은 6살짜리 아들이 다닐 수 있는 외국인 학교가 서울 연희동의 서울외국인학교(SFS) 뿐이기때문이다. 인천 송도신도시는 명색이 경제특구(경제자유구역)라지만 외국인학교가 한 곳도 없다. 서울 한남동에 가족을 두고 울산에서 정유관련 기술 컨설팅을 하고 영국인 존스톤씨(49)는 "인천은 그나마 출퇴근이라도 할 수 있으니 나은 편"이라면서 "수도권을 벗어난 지방공단등에서 근무해야하는 외국인들중에는 한국까지 와서 주말부부로 사는 경우도 있다"고 말했다. 아내와 자녀들이 하나같이 "그나마 영어가 통하는 병원시설 등이 어느 정도 갖춰져 있고 외국인 커뮤니티가 형성돼 있는 서울 한남동을 떠나 지방으로 갈바에야 한국생활을 포기하고 귀국하겠다"고 버티기 때문이라고 존스톤씨는 전했다. 주한 외국인 비즈니스맨들 가운데는 자녀교육 문제 등으로 단신부임을 하거나 가족을 홍콩이나 싱가포르에 두고 주말마다 합류하는 '기러기 아빠'들이 허다하다. 송도신도시 셀트리온사의 경우에도 외국인 15명 가운데 가족을 동반한 경우는 J씨뿐이다. 박노진 셀트리온 부사장은 "외국인들의 관점에서 교육이나 병원서비스를 기준으로 볼 때 한국은 오지"라며 "외국인 연구인력들이 한국에 오려다가 열악한 생활서비스 수준에 경악한 나머지 싱가포르 홍콩 등으로 가버리는 경우가 적지 않다"고 말했다. 그는 "외국인 고급인력을 모셔오기 위해 집세와 자녀교육비,의료비 등으로 1인당 한달에 5백만원 이상을 따로 주고 있다"고 밝혔다. 일본계 기업인 엡손코리아와 덴소코리아의 경우도 대다수 임원은 가족을 일본 등에 남겨둔 채 서울에서 혼자 생활하고 있다. KOTRA가 지난해 10∼11월 외국투자기업 임원 2백23명을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 '한국의 교육환경에 대해 만족한다'는 답변은 15.7%에 불과했다. 한국의 외국인학교는 일본 싱가포르 홍콩 등의 외국인학교에 비해 교육서비스가 형편없는데도 불구하고 교육비는 비싸기로 소문이 나있다. 주한 외국인들이 사교육비를 제외한 자녀 1인당 교육비로 1년에 평균 1천8백88만원을 지출하는 것으로 KOTRA 조사에서 나타났다. 이는 이웃 일본 홍콩 싱가포르 등의 경우 외국인학교에 대해서도 상당한 재정지원을 하고 있는 데 반해 한국 교육당국은 규제는 잔뜩 하면서 지원은 한푼도 하지 않기 때문이다. 그 결과 외국인 교육여건이 동아시아에서 가장 열악하다는 평가를 받는다. 전국의 44개 외국인학교 중 22곳은 정원이 1백명 이하,정원 1천명을 넘는 학교는 2개,운동장이 있는 학교는 3개에 불과하다. 그 중 낫다는 SFS,서울국제학교(SIS) 등 일부 명문교(?)는 학생이 몰려 6개월∼1년씩 기다려야 입학하는 실정이다. 세계 11~12위권 경제열강(교역기준)에 들고 명색이 '동북아 경제중심'을 국책으로 내세우는 한국의 외국인 교육환경이 이 지경인 까닭은 정부의 폐쇄적이고 근시안적인 정책 때문이라고 전문가들은 지적한다. 외국인학교에 대해 정부는 입학 자격(외국인 또는 5년 이상 해외에 거주한 내국인 자녀),설립자(외국인),설립형태(비영리법인) 등을 일일이 제한하면서 학교 부지나 시설은 물론 세제지원도 거의 하지 않는다. 화찬권 한국외국인학교(KIS) 행정실장은 "학교를 넓히려 해도 교육청의 지원이 전무한 상태에서 부지 확보,건축 인·허가까지 모든 것을 독자적으로 해결해야 하기 때문에 엄두를 못내는 형편"이라고 하소연했다. 정부는 경제자유구역을 선정하면서 외국인학교 투자촉진을 위해 내국인 입학과 과실송금을 부분 허용하겠다고 발표했지만 전교조 등의 반발로 관련법안이 2년째 표류하고 있다. 의료서비스도 마찬가지다. 맥케니컨설팅의 스티브 맥케니 대표는 "건강보험혜택이 주어지지 않기 때문에 주한 외국인들의 의료비 부담이 엄청나다"면서 "외국인들은 비용이 많이 드는 큰 병 치료나 수술은 당연히 본국으로 가서 해야 하는 것으로 알고 있다"고 말했다. 맥케니 대표는 "소득이 높은 다국적기업의 한국지사에 근무하는 외국인들은 한국의 일류 병원과 외국인학교를 이용하는데도 불구하고 한국 생활이 도쿄나 싱가포르 홍콩에 비해 월등히 힘들다고 하소연하고 있다"면서 "이런 실정에 비춰볼 때 학원 강사에서부터 중소기업에 근무하는 중간급 내지는 저임금 외국인근로자들의 생활불편이 어느 정도일지 한국의 정책 당국자들이나 시민들이 헤아려야 한다"고 말했다. 김현석 기자 realist@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