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라 천년왕성이라 일컫는 경주 월성(月城. 사적 제16호) 안에서 지름 50m 이상을 헤아리는 거의 똑같은 평면 구조의 대규모 연못흔적이 두 군데서 확인됐다. 국립경주문화재연구소(소장 윤근일)는 최근 발간한 월성 일대에 대한 지표조사보고서인 '월성'을 통해 동서편으로 마치 반달처럼 길쭉한 안쪽 구역 중에서도 서쪽편과 그 반대편 동편 지역에서 각각 대규모 연못 흔적을 확인했다고 말했다. 2003년 11월 부터 2004년 5월까지 실시한 조사 성과를 수록한 이 보고서에 의하면 서편 연못터는 육안으로도 판별이 가능할 정도로 그 흔적이 완연하며 다른 하나는 조선 영조 때 월성 북벽에 설치된 석빙고 남서쪽에서 지하탐사 결과 드러났다. 이들 두 연못터에서 특이한 점은 그 평면 형태가 마치 불가사리처럼 모두 세 갈래로 쭉 삐쳐나간 모양을 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크기 또한 모두 길이 55m 안팎에이르고 있었다. 이 중 서편 연못터는 현재도 주변 지대보다 1m 가량 낮은 데다 이곳에 식생하는식물류가 늪지성이라는 점에서 이곳이 확실한 연못터임을 알려주고 있다. 월성이 성벽 둘레 총 1.8㎞, 그 안쪽 면적 5만5천600평이며, 남북간 폭은 최대260m에 지나지 않는다는 점을 고려할 때 지름 55m에 달하는 대규모 연못이 월성 안에 두 곳이나 설치돼 있었다는 점은 비상한 관심을 모은다. 특히 월성은 남쪽으로 남천이라는 강이 띠처럼 두르고 있고, 드넓은 경주 평야지대에 솟아오른 구릉지대에 자리잡고 있다는 점에서 이들 두 대형 연못에 어떤 방식으로 물을 댔는지가 더욱 궁금증을 더하고 있다. 이와 관련해 삼국사기 신라본기 경덕왕 19년(760) 조에 보이는 "2월에 궁중(宮中)에다가 큰 연못[大池]을 팠으며, 또 궁남쪽 문천(蚊川. 현재의 남천) 위에는월정교(月淨橋)와 춘양교(春陽橋)의 두 다리를 놓았다"는 기록이 주목되고 있다. 보고서는 이 기록에 보이는 "궁중의 큰 연못"이 바로 이번 지표조사에서 확인된두 연못터를 지칭하고 있을 가능성이 큰 것으로 보았다. 이번 지표조사에서는 또 월성을 지칭하는 신라시대 용어인 '在城'(재성)이라는명문이 적힌 기와와 '儀鳳四年皆土'(의봉 4년 개토)라는 글자를 새긴 기와를 아울러수습했다. 의봉(儀鳳)이란 당 고종(唐高宗. 재위 650-683)이 676년에 제정해 사용한 연호로서 그 생명은 3년만인 678년에 조로(調露)라는 새 연호에 의해 폐기됐다. 따라서의봉(儀鳳) 4년(679)이란 연호는 중국에는 없었고, 새로운 연호 반포 사실을 모른채 신라에서 계속 사용한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의봉과 같은 중국 연호를 앞세우고 '○○●年皆土'(○○는 연호, ●는 연도)와 같은 명문은 신라시대 유물에서 더러 확인되고 있는데 '○○●年'이 그 제작 시기를 보여준다는 것은 분명하지만 이것이 '모두 흙으로써 만들었다'는 정도의 의미였을 '皆土'와는 어떤 연결 고리를 이루는지에 대해서는 정설이 없다. (경주=연합뉴스) 김태식 기자 taeshik@yn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