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3년 11월 보드게임 카페를 오픈할 때만 해도 나는 '창업 후 1년 안에 프랜차이즈를 모집한다'는 야심찬 목표까지 세웠다.


의욕적으로 시작한 사업은 그러나 첫 단추부터 잘못 끼워지며 삐걱대기 시작했다.


주변 상권은 물론 영업허가 서류도 제대로 검토하지 않고 무조건 임대료가 싼 곳을 찾았던 실수나 전문 인력 없이도 카페를 운영할 수 있다는 안일한 생각은 곧바로 악순환의 연결고리가 돼 돌아왔다.


중소 제과업체에서 디자이너로 일하다 스물여섯이라는 젊은 나이에 사장님 소리까지 들어봤지만 나의 장밋빛 꿈은 사라진 지 오래다.


인생 공부를 톡톡히 했다고 스스로 위안해 보기도 하지만 수업료는 너무나도 비쌌다.


대학 졸업후 직장 생활 2년째에 접어든 지난 2003년, 우리집 가계에 '빨간불'이 켜졌다.


전에도 그리 넉넉한 형편은 아니었지만 계속된 경기 침체로 자동차 회사에서 영업 사원으로 일하는 아버지는 벌이가 자꾸만 나빠져 갔다.


공교롭게 어머니도 치매로 고생하시는 할머니의 병수발을 드느라 15년간 운영해 오던 철물점을 그만 두었다.


평소 사업에 관심을 갖고 있었던 내가 사업가의 꿈을 꾸게 된 것은 그 즈음이다.


당시 서울 강남에서 직장생활을 하던 나는 친구들과 몇 번 가보았던 '보드게임 카페'에 관심을 가졌다.


바둑,장기부터 시작해 브루마블,체스 같은 다양한 게임을 친구나 연인, 가족들과 함께 즐길 수 있어 놀이문화가 부족한 국내 현실에 잘 맞고 발전 가능성도 커 보였다.


신종업태로서 유행 가능성을 보기 위해 신촌 대학가와 강남 등지 번화가에 있는 보드게임 카페 20여곳을 직접 둘러봤다.


평일에도 70% 정도 자리가 꽉 들어차 있었다.


'이거다'라는 확신이 섰다.


아버지에게 근사한 사업계획서를 내밀어 사업 승인을 얻은 나는 어머니와 한 달간 장소 물색을 하던 중 시내 터미널앞 오래 된 4층짜리 건물의 3층에 있는 당구장 자리(60평)가 눈에 띄었다.


보증금 2천만원에 월 임대료 60만원으로 비용은 시내 인근의 절반 수준이었다.


터미널앞이라고 해도 시내 중심가와 떨어져 있는 데다 빌딩이 고가도로에 가려져 있고 유동인구도 적었기 때문이다.


투자 리스크가 있긴 했지만 그때만 해도 시내에 보드게임 카페는 한 곳도 없는 상황이어서 오픈만 하면 선점효과로 대박을 낼 수 있다는 순진한 생각에 권리금(2천만원)까지 얹어주고 2년 임대계약을 맺었다.


4천5백만원이나 들인 인테리어 공사가 마무리될 즈음…,내가 보드게임 카페를 연다는 이야기를 들은 친구로부터 시내에 보드게임 카페가 최근 두 곳이나 오픈했다는 벼락 같은 소식이 날아왔다.


시장 조사를 할 때 앞으로 오픈 예정으로 있는 카페가 있는지까지 파악하지 못한 게 화근이었다.


나는 즉시 경쟁 가게로 달려갔다.


우리 가게와 인테리어 차이가 있어 가격정책만 잘 수립하면 승산이 있을 것이라며 스스로 위안했다.


시간당 기본료는 경쟁업체와 비슷하게 만들면서 음료 가격대는 1천∼2천원선에 내놓은 경쟁업체들과 달리 1천5백∼3천5백원까지 다양하게 책정해 2003년 11월 매장을 오픈했다.


하지만 현실은 냉엄했다.


'오픈 특수'조차 기대할 수 없었다.


개점 후 두 달간 월평균 매출은 3백40만원으로 예상치(6백60만원)의 절반 수준이었다.


반면 비용은 4백55만원으로 예상비용(4백10만원)을 훨씬 넘겨 첫 달부터 적자를 냈다.


아르바이트생을 5명이나 둔 데다 평일 관리를 맡은 어머니,주말 관리를 맡은 나까지 총 7명이 근무하는 통에 인건비 비용이 만만치 않았다.


거기다 계절적 요인을 고려하지 않아 난방비까지 예상치를 훨씬 뛰어넘었던 것.보드게임 규칙에 정통한 전문 매니저를 두지 않다보니 손님들에게 게임룰을 소개해 줘야 할 아르바이트 도우미들을 교육하는 데도 어려움이 많았다.


50이 된 어머니나 파트타임으로 일하는 내가 1백여 가지 게임룰을 외워 아르바이트생을 교육시키는 데는 한계가 있었다.


하지만 비용 부담 때문에 전문 매니저까지 고용할 형편이 못 됐다.


음료값이라도 낮춰 손님들을 끌어오려 했지만 고객들은 늘어날 기미를 보이지 않았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근 한 달간 애써 교육시켜 놓은 아르바이트생 중 4명이 이듬해 3월 동시에 그만뒀다.


평일 저녁과 주말에 매장 관리를 맡았던 나는 고민고민하다 결국 7월께 다니던 직장을 그만두고 카페 운영을 전담키로 했다.


스물여섯에 사장이 된 나는 손님들을 끌어 모으려고 갖가지 방법을 시도했다.


우선 음료 가격을 다시 높였다.


어차피 음료수를 먹을 사람은 먹을테니 하나라도 비싸게 팔자는 계산이었다.


그리고 어린이들이라도 끌어올 요량으로 '초·중·고생 1천원 할인쿠폰'을 나눠주는 이벤트도 기획했다.


하지만 기대했던 수익성은 별로였다.


어린이들은 음료를 거의 시키지 않았다.


더구나 이따금 카페를 찾는 대학생들은 어린아이들이 시끄럽게 떠들며 게임하는 모습에 눈살을 찌푸리며 나가기 일쑤였다.


결국 매출은 자꾸 떨어져 월 매출액이 2백만원 아래로 곤두박질쳤다.


나는 업종 전환을 고려하지 않을 수 없었다.


사업을 시작할 때 장사가 안돼 폐업을 해야 하는 경우 일반 카페로 전환하면 좀 더 비싸게 넘길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막상 업종 전환을 하기 위해 알아보니 현재 점포자리는 사무실 용도로밖에 쓸 수 없다는 사실을 알게 됐다.


점포 계약을 할 때 값이 싸다는 것만 알아봤지 영업허가관련 서류 등 법률적인 부분까지 꼼꼼히 알아보지 못한 탓이다.


한마디로 그동안 본의 아니게 무허가 영업을 해 온 셈이다.


사업을 빨리 정리해 보증금이라도 건지고 싶은 마음에 가게를 부동산 시장에 내놓은 지 오래지만 해를 넘겨도 가게를 보러 오겠다는 문의조차 들어오지 않고 있다.


정리=이방실 기자 smile@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