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름답기로 유명한 홍콩항의 또다른 명물은 항만 앞바다에 떠 있는 하역용 바지선이다. 작은 컨테이너선 화물 하역에 사용되는 이들 바지선 백여척이 컨테이너 화물을 내려받아 이를 다시 뭍으로 운반하는 광경은 관광객들의 감탄을 자아낼 정도로 장관이다. 영세한 해운업체들은 주로 이들 바지선을 이용해 하선 작업을 벌인다. 소규모 화물선의 하역작업을 할 공간이 넉넉치 않은데다 터미널을 이용할 경우 항만 하역료도 올라가기 때문. 항만 주변을 빼곡히 채운 바지선과 26개 선석(배 1대가 정박할 수 있는 공간으로 통상 3백m 내외)에서 동시에 물건을 실어나르는 덕에 홍콩항이 처리하는 물동량은 세계에서 가장 많다. 지난해의 경우 홍콩항은 2만2천TEU(20피트 컨테이너)의 화물을 소화했다. 9개 컨테이너 터미널에 26개 선석을 갖추고 있으며 허치슨 등 4개 회사가 터미널별로 운영을 나누어 하고 있다. 홍콩항은 1년 3백65일 24시간 가동을 멈추지 않기로도 유명하다. 5천TEU급 선박 18척이 한꺼번에 정박할 수 있고,매주 4백40척이 드나든다. 홍콩항의 자연조건은 항구로는 최적에 가깝다. 조수간만의 차가 2.2m로 적고 평균 수심이 12∼14m로 깊다. 이 덕분에 일찍부터 항만이 발달했다. 하지만 홍콩항이 전세계 1위 항만으로 군림하게 된 것이 천혜의 조건덕분만은 아니다. 그보다 더 돋보이는 강점은 바로 서비스다. 홍콩은 '서비스 제일주의'를 지향한다. 환적화물을 14일간 항만에 무료로 보관해준다. 선사가 입항시간을 미리 알려주면 입항을 도와주는 도선사가 1분의 오차없이 출동하는 것도 호평받는 서비스다. 홍콩의 터미널 운영사들은 완전 전산화된 시스템을 갖추고 컨테이너를 싣고 내리는 과정은 물론 부두 하치장의 적재 현황,주요 항로의 이동경로 등의 정보까지 완벽하게 제공하고 있다. 하지만 이런 홍콩항도 최근 강력한 경쟁자로 대두한 선전항때문에 긴장감을 감추지 못하고 있다. 선전항의 처리물량은 매년 30% 이상씩 성장하면서 지난해 1천만TEU를 넘어섰다. 이전에 홍콩항에 집중됐던 물량이 선전과 홍콩으로 양분됨에 따라 홍콩의 성장세가 둔화되리라는 전망이 지배적이다. 선전항의 경우 해상운송료가 다소 비싼 편이지만 화물처리비나 육상운송비는 홍콩항보다 저렴하다. 과거에는 중국 당국의 까다로운 심사때문에 통관까지 일주일 이상 걸리는 게 보통이었지만 최근 중국이 WTO에 가입하면서 그 시간이 3일로 크게 줄어들었다. 이에 따라 아시아 역내 화물이나 신속한 수송이 필요한 화물은 홍콩항을 이용하지만 장거리 화물의 경우 선전에서 선적하는 비율이 점차 높아지는 추세다. 남아시아 권역의 맹주인 싱가포르항도 경이로운 항만으로 첫손에 꼽힌다. 자체 수출입 물량이 거의 없음에도 불구하고 환적화물만으로 세계 2위를 점했다. 지난해에는 2만5백TEU의 화물을 처리해 2003년 2천TEU이던 홍콩항과의 격차를 1천5백TEU까지 좁히는 등 최근들어 더욱 탄력을 받고 있다. 싱가포르의 자랑은 최근 개장한 반자동화 터미널 파시르 판장 터미널.대부분의 항만이 트럭을 배 앞에 대고 물건을 하역하지만 이 곳은 무인 자동차에 의해 컨테이너를 뭍으로 운반한다. 파시르 판장 터미널 관계자는 "일부 작업을 제외하고 화물의 입출항 작업을 자동화한 덕분에 효율이 25% 가량 좋아졌다"며 "현재 6개인 반자동화 선석을 오는 2011년까지 11개로 늘린다는 계획"이라고 말했다. 싱가포르항 역시 '새로운 경쟁자'를 의식해야 하기는 마찬가지다. 말레이시아의 탄중펠라파스항이 저렴한 하역료를 내세워 무차별로 압박해오고 있기 때문.탄중펠라파스항이 국제무역항에 걸맞는 규모로 성장하는 2010년께면 남중국권역도 극심한 항만전쟁의 소용돌이에 휘말릴 공산이 크다고 현지 해운선사 관계자들은 지적하고 있다. 홍콩=송형석 기자 click@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