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양항은 해운 당국엔 '뜨거운 감자'같은 존재다. 부산항과 광양항 두 곳을 동시에 허브(Hub) 항만으로 육성한다는 방침아래 시설을 대폭 확충했지만 예상보다 활성화가 영 더디기 때문이다. 정부는 광양항 물동량이 연평균 27% 이상 늘어나리라는 추산아래 98년 광양항이 문을 연 직후부터 시설을 적극 확충해왔다. 하지만 현재 성장률은 가까스로 10%를 넘는 정도다. 이 때문에 화물입출항료 선박입출항표 접안료 정박료 등 이용료를 면해주는 등 출혈성 지원책을 통해 '광양항 띄우기'에 나섰지만 가시적 성과는 보이지 않고 있다. 이와 관련,국무총리실은 지난해 광양항이 과잉개발되고 있다며 시설확충 속도를 조절하라는 권고안을 내놓기도 했다. 광양항이 과잉개발된 것은 80년대 중반부터 정부가 '지역균형 발전'과 '항만개발'을 연계시키는 정책을 펼친 데서 비롯됐다. 일부 전문가들은 "지역 표심을 의식해 무리한 개발사업을 벌인 것이 부메랑이 돼 돌아오는 것"이라는 비난을 서슴지 않는다. 하지만 대다수 전문가들은 첫 단추가 잘못 꿰졌더라도 일단 항만이 만들어진 만큼 항만을 제대로 활용할 방안을 강구하는 게 생산적이라고 지적한다. 12개 선석을 갖춘 광양항은 연간 최대 3백만TEU의 물동량을 처리할 수 있다. 하지만 지난해 광양항을 오간 물동량은 1백32만TEU에 불과하다. 정부 입장에서는 애써 만들어놓은 항만이 놀고 있는 셈이다. 하지만 항만을 이용하는 선사들로선 더할나위 없이 안락한 환경이기도 하다. 이 때문에 일부 외국계 선사는 상하이에서 화물을 싣고 광양항에 들러 화물을 재배치하기도 한다. 광양항이 지리적으로 태풍으로부터 안전하다는 점도 비교우위다. 2003년 태풍 매미로 부산항의 하역시설이 초토화되다시피 한 피해를 입은 후 각 선사들은 항만을 이용할 때 태풍피해가 있는지의 여부를 까다롭게 따지는 추세다. 미쓰이 물산,셈콥 등 유수 외국기업이 항만배후부지에 투자한 것도 광양항의 성장가능성을 높이고 있다. 이들 기업이 좋은 성과를 낼 경우 광양항의 인지도가 빠르게 높아질 수 있어서다. 하지만 광양항을 옹호하는 전문가들도 광양의 잠재력을 제대로 끌어내려면 정책방향을 뜯어고쳐야 한다는 데 입을 모으고 있다. 현재 정부는 △2011년까지 33선석을 추가로 개발하고 △배후 SOC를 조기에 확충하며 △3백만TEU 유치전략을 연구하기로 하는 등 광양항의 외형을 키우는 데만 집중하고 있다. 하지만 외형확장 및 물량경쟁에 치중할 경우 중국이나 일본항만과 경쟁할 신항만을 육성하기는커녕 도리어 부산항의 발목만 잡을 공산이 크다고 전문가들은 우려한다. 해양부의 한 고위 관계자는 "광양항은 인근 항만과 차별화된 서비스를 제공하는 작지만 강한 항만으로 육성해야 할 것"이라고 지적했다. 현장에서도 같은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한 항만 운영사 관계자는 "광양항이 넓은 배후부지를 자랑하지만 곳곳에 물이 고여 있는 등 당장 활용하기 힘든 형편"이라며 "외국기업에 광양항을 팔려면 상품품질에 대한 관리가 더 시급하다"고 지적했다. 또 다른 항만 운영사 관계자는 "덩치 키우기에 급급하기 전에 항만 운영사와 해운사간에 만연한 리베이트를 없애고 업체간 출혈경쟁을 막는 등 내실부터 기해야 옳다"고 꼬집었다. 송형석 기자 click@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