李春根 < 자유기업원 부원장ㆍ政博 > 한국시간으로 지난 21일 부시 미국 대통령은 두번째 임기를 시작했다. 부시 대통령의 2기 취임사는 1기의 정책이 상당 부분 그대로 답습되어질 것임을 시사한다. 그러나 1기와 달리 부시 2기의 미국은 외교정책에서 보다 안정적인 접근방법을 취할 것으로 보인다. 임기 초반의 미숙한 상태에서 벌여놓았던 일들을 임기 후반에 보다 원숙한 방식으로 정리 및 완성하려는 것은 재선에 성공한 대통령들의 일반적인 행태였다. 우선 부시 행정부의 국제정치적 관점은 변한 것이 없지만 언어의 표현 방식과 목표의 추구 방식이 변화됐다는 사실을 지적할 수 있다. 부시 대통령은 그동안 적대국들을 '악의 축'이라 지칭함으로써 대화 그 자체를 부정하고 있었다. 미국인들이 신봉하는 기독교적 정치사상에서 악은 제거의 대상일 뿐 대화의 대상이 될 수 없기 때문이다. 2기를 맞는 부시 행정부는 악의 축이란 용어를 '폭정'(tyranny)이라는 용어로 바꾸어 쓰고 있다. 미국은 민주당 공화당을 불문하고 세계 모든 나라들이 정치적으로 자유 민주주의 국가가 될 경우,그리고 경제적으로 자유주의 시장경제 체제로 변할 경우 전쟁이 없을 뿐 아니라 안정과 번영이 보장되는 세계가 된다고 믿는다. 미국이 그런 세계에서 가장 큰 수혜자가 될 것임은 물론이다. 부시 행정부가 특이한 점은 미국은 이같은 목표를 성취해야 할 뿐만 아니라 현실적으로 성취할 수 있다고 믿는 데 있다. 현실주의적이며 보수적,고립주의를 전통으로 하는 공화당의 부시 행정부가 민주당의 등록상표인 윌슨주의적 이상주의,세계에 대한 개입주의를 택하게 된 것은 바로 9·11이 초래한 비정상적인 세계정치의 결과다. 악의 축 대신 폭정이라는 용어를 선택한 것은 미국 국민들의 여론은 물론 세계의 여론을 불러모으기 위한 조치다. 누구도 자유의 확대,번영의 확대라는 보편적 원칙을 거부할 수는 없을 것이기 때문이다. "우리세상에서 폭정을 종식시킴을 궁극적인 목표"로 삼겠다는 부시 취임사의 일반론은 콘돌리자 라이스 국무장관 지명자가 인준 청문회에서 했던 말 "북한은 폭정의 전초기지"에서 구체화됐다. 부시 2기 행정부는 '북한 핵 문제'에 대해 군사적,강압적 대안을 강구하기보다는 북한의 '폭정'에 대해 자유와 인권이라는 보다 포괄적 잣대를 적용하겠다는 의미다. 북한에 자유를 보장하는 정권이 들어선다면 '북한핵 문제'는 해결할 필요조차 없는 문제가 된다. 지금 미국이 골치 아파하는 것은 핵무기 그 자체가 아니기 때문이다. 핵무기가 문제라면 미국은 러시아 중국 영국 프랑스를 윽박질러야 할 것이다. 미국은 지금의 북한을 핵은 가지고 있어도 미국과 세계의 평화에 위협이 되지 않는 그런 나라로 바꾸는 것을 목표로 삼고 있다. 이제 공은 북한으로 넘어갔다. 한국 역시 미국의 대북정책에 보다 분명한 입장을 취하지 않을 수 없게 되었다. 북한이 핵을 만드는 것이 국가안보를 위해 일리있는 일이냐 아니냐의 여부를 훨씬 넘어 북한의 정치체제가 폭정이냐 아니냐의 문제로 확대됐기 때문이다. 그동안 일부 한국인들은 중국의 부상(浮上)을 통한 대미견제의 환상을 꿈꾸기도 했다. 중국이 미국보다 우리에게 더 큰 수출상대국이라는 이유로 그같은 환상이 정당화되기도 했다. 그러나 우리가 중국에 수출하는 물품 중 70~80%의 궁극적 종착지가 미국이라는 것이 현실 세계다. 이미 군사비가 세계의 절반이 넘고 경제력도 세계 40%에 육박하는 역사상의 초강대국 미국이 이제 자신의 외교 정책에 '폭정의 종식과 자유의 확산'이라는 도덕적 외피를 입히고 있다. 미국과의 협력은 우리의 국가안보는 물론 경제발전의 기본축이라는 사실,그리고 미국의 대북 정책의 평화적 기조를 계속 유지시키기 위한 우리의 지렛대는 한·미 협력 강화에 있다는 사실을 명심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