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5년은 금융 전쟁의 원년이 될 것이다'


은행 증권 보험사 관계자들은 2005년 화두로 단연 '전쟁'을 꼽고 있다.


전쟁의 성격은 해당업종간의 국지전(局地戰)이 아니라 전면전이다.


은행은 은행끼리,증권은 증권끼리,보험은 보험끼리만 경쟁하는 것은 이제 옛말이다.


업종에 관계없이 전방위로 전개되는 무차별적인 전면전이 닥쳐올 전망이다.


금융업종간 벽이 허물어지고 업무영역이 통합화되면서 금융산업 전반에 걸쳐 모든 금융회사들이 뺏고 빼앗기는 경쟁체제로 재편됐기 때문이다.


이미 몇몇 대형 은행들은 지주회사 등을 통해 은행 증권 자산운용 보험 카드를 거느린 "금융 그룹화"가 되면서 세를 불리고 있다.


은행권의 침범에 위기를 느낀 제2금융권은 생존을 위한 구조조정에 나서고 있다.


설상가상으로 외국계 자본의 국내 공략은 속도를 더해가고 있다.


씨티은행 HSBC 피델리티 등 각 분야에서 랭킹 1∼2위를 달리는 금융 강자들이 잇따라 진출,한국이 이들의 격전지가 될 것임을 예고하고 있다.


이에 따라 금융계에는 1백조원이 넘는 공적자금을 수혈받아 '클린 시장'으로 다시 태어난 한국 금융시장이 자칫 외국계 자본의 텃밭으로 전락할 수 있다는 우려가 팽배하다.


이에 금융 당국은 외국 자본에 대한 국내 금융회사의 역차별 해소,토종 금융자본 육성 등 대응책 마련에 착수했다.


올해 한국경제신문의 '다산(茶山)금융상' 대상 수상자로 선정된 김승유 하나은행장은 "세계 유수 금융회사의 잇달은 진출은 국내 금융산업 발전에 기여할 수 있는 긍정적인 점도 있지만 부정적인 측면도 그에 못지 않다"면서 "토종 금융회사의 경쟁력 강화 노력이 그 어느 때보다 시급하다"고 강조했다.


윤계섭 서울대 교수(다산금융상 심사위원장)는 "신한은행 대우증권 미래에셋투신 삼성화재 등 올해 다산금융상 수상자로 선정된 업체들은 전쟁을 방불케 하는 국내 금융산업의 현주소를 냉철히 인식하고 금융 상품 및 서비스 개발 등을 통해 금융산업 발전을 한 단계 높였다"고 평가했다.


◆최대 격전지는 소비자금융


은행 증권 투신 보험 등 업종 벽을 넘어서 진행되는 금융대전의 승패는 '누가 더 많은 고객을 확보하느냐'에 달려 있다.


고객 쟁탈전인 셈이다.


하지만 예금과 대출,보험,카드 등 금융산업 성장세는 최근 내수경기 침체 등의 영향으로 둔화되는 추세다.


신규 고객을 창출하는 것은 한계가 있을 수밖에 없다.


각 금융회사들이 우수한 금융상품을 내놓고,편리하고 질 높은 서비스를 제공하는 데 모든 역량을 집중하고 있는 것도 바로 고객 확보를 위한 것이다.


시중 은행들이 일반 예금보다 0.5%포인트 높은 금리를 제공하는 특판예금을 경쟁적으로 내놓고 있는 것도 이런 배경에서다.


국민은행을 비롯해 조흥(최고 연 3.9%) 신한(3.9%) 외환(4.0%) 한국씨티(4.1%) 하나(3.9%) 우리(4.0%) 제일은행(4.0%) 등 사실상 전체 시중은행이 특판예금 판매에 매달리고 있다.


이들 은행이 특판예금으로 끌어들인 돈은 무려 10조원에 이른다.


은행권은 거액자산가 유치에도 사활을 걸고 있다.


5억∼10억원 이상의 부자고객을 대상으로 하는 프라이빗 뱅킹(PB)센터를 부유층이 밀집돼 있는 지역에 경쟁적으로 개설하고 있는 것.은행들이 일반 지점을 축소하면서 PB센터를 늘리는 것은 수익 기여도가 높은 우량 고객을 확보하기 위해서다.


PB영업에는 은행뿐만 아니라 증권사들도 적극 뛰어들고 있다.


도덕재 한투증권 여의도PB센터장 "증권사들은 저금리 시대 대안으로 부상하고 있는 투자상품을 중심으로 차별화된 자산관리 서비스로 특화해 나가고 있다"고 설명했다.


◆외국 자본과 토종 자본의 한판 승부


자산 규모 세계 1위인 씨티은행이 한미은행을 인수한 '한국씨티은행'이 지난달 출범했다.


한국씨티은행은 출범 직후부터 고금리 특판예금,직장인 신용대출,주택담보대출 등에서 공격적인 마케팅에 돌입,금융계에 '씨티 경계령'이 내려진 상태다.


설상가상으로 자산 규모 세계 2위이면서 소매금융의 또 다른 글로벌 강자인 HSBC(홍콩상하이은행)가 제일은행 인수에 본격 뛰어들었다.


내년 1월 중 HSBC의 제일은행 인수가 최종 확정될 전망이다.


세계 1,2위 은행의 한국시장 공략이 가속화할 것으로 예상되자 시중은행장들은 잇따라 '은행들의 전쟁'을 선포,전열 재정비에 착수했다.


외국 자본의 침투는 비단 은행권뿐만 아니다.


프랭클린템플턴,슈로더,푸르덴셜,PCA 등 해외 유수의 투신사들이 진출해 주도권 싸움을 벌이고 있는 간접투자시장에 지난달 중순 세계 1위인 피델리티가 금융감독원으로부터 정식 허가를 받고 뛰어들었다.


피델리티가 굴리는 자산 규모는 2003년 말 기준으로 약 1조달러(약 1천1백조원).우리나라 전체 투신사 및 자산운용사 수탁고가 1백90조원이라는 점을 감안하면 피델리티의 위력을 쉽게 가늠할 수 있다.


전문가들은 업종간 영역이 허물어지고 있는 새로운 경쟁환경 아래에서는 대형화 또는 전문화가 생존의 길이라고 강조한다.


경쟁 심화에 따른 수익성 악화를 막기 위해 대형화를 통해 시너지 효과를 꾀해야 하며,그렇지 못한 중소 금융회사는 전문 분야에서 차별화된 서비스로 승부를 걸어야 한다는 지적이다.


장진모 기자 jang@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