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담 후세인 전 이라크 대통령이 걸프지역 패자의 꿈을 지워버린채 미군의 비밀 구금시설 독방에서 체포 1년째를 맞고 있다. 후세인 전 대통령은 미국 등 서방에는 세계 평화를 위협하는 `사탄 후세인'이었지만 아랍권에서만큼은 서방 제국주의에 유일하게 `맞서는 자'(사담의 아랍어 뜻)로영웅 대접을 받았다. 1937년 티크리트 외곽의 소도읍 알-오자에서 태어난 그는 대학생 시절부터 바트당에 가입, 대통령 암살모의-국외도피-수감-쿠데타 성공 등으로 이어지는 치열한 권력투쟁 끝에 79년 대통령에 취임한 이후 24년간 철권통치를 휘둘렀다. 후세인은 근대화 정책과 정치적 소수파인 시아파와 쿠르드족 탄압 등을 통해 입지를 굳힌 뒤 아랍 맹주가 되려는 야욕으로 80년 이란을 침공, 8년간 전쟁을 벌인데이어 90년에는 쿠웨이트를 침공, `전쟁광'이란 딱지를 달았다. 두 차례의 전쟁과 국제사회의 봉쇄조치는 이라크 경제를 파탄나게 하고 민초들의 삶을 피폐하게 만들었다. 그러나 궁핍에 허덕이던 이라크 국민들은 아랑곳하지 않은채 후세인 일가는 수십억달러에 달하는 비밀재산을 빼돌리며 사치와 방종을 거듭했다. 티그리스강 절경이 내려다보이는 대통령 주궁은 황금 침대와 화장실과 함께 축구장만큼 넓은 접견실, 오페라 극장만한 무도장을 갖추고 6억5천6백만달러의 지폐뭉치가 발견되는 등 웅장함과 호화로움이 세계 어느 재벌을 따라갈 수 없었다. 후세인은 또 공포에 기초한 스탈린식 통치술을 숭배, 자신의 비리를 폭로한 사위들도 처형하는 등 권력유지를 위해 3천여명에 달하는 정적을 처형했다. 미국의 이라크 침공을 앞두고 `항전'의 목소리를 높이던 그가 전쟁 발발 8개월만인 지난해 12월 티크리트 농가에서 은신중에 체포됐을 때 말 그대로 힘없고 초췌한 노인에 지나지 않았다. 그의 `마지막 궁전'은 한 사람이 누울 만한 넓이의 지하 2m 땅굴이었다. 당시 미군에 저항하거나 장렬하게 자결하지 않은채 오직 목숨을 부지하는데 급급한 그의 굴욕적인 모습은 그의 통치를 받은 이라크 국민들과 전 세계를 당혹하게했다. 현재 그는 아끼던 두 아들 우다이와 쿠사이마저 잃고 조지 부시 미국 대통령의전리품으로 전락한채 미군 비밀 구금시설에 주요 `전범' 80여명과 함께 구금돼 있다. 후세인은 3.5m×4.5m 크기의 독방에서 아랍어 서적을 읽는 것으로 소일하고하루 2차례씩의 옥외 운동이 허용돼 있으며 11일부터 시작된 측근들의 단식농성에도불구하고 즉석 전투식량(MRE)으로 정상 식사를 계속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최근 탈장 수술 및 전립선 비대 치료를 받았던 그는 스트레스 탓인지 혈압변화가 심하며, 기소를 앞두고 이야드 알라위 총리에게 용서를 구걸하며 선처를 호소하는 메시지를 보내는 초라한 신세로 전락했다. 그가 한때 영화를 누리던 티그리스강변 대통령궁이 지금은 포탄구덩이와 폐허만남긴채 어린이들의 놀이터로 바뀐 모습을 봤다면 권력무상이 무엇인지 느꼈음직하다. (서울=연합뉴스) 정주호 기자 jooho@yn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