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 의료진이 세계 최초로 제대혈(탯줄 혈액)에서 추출한 성체 줄기세포를 이용해 척수마비 환자를 회복시키자 전세계 의학계의 눈이 한국에 집중되고 있다. 고칠 수 없는 병으로 알려진 척수마비를 치료할 수 있다는 것이 입증됐기 때문이다. 이번 성과는 세포나 유전자를 이용한 신기술로 불치병을 치료하는 꿈을 현실화하는 길을 활짝 열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더구나 윤리적 문제가 불거지고 있는 배아 줄기세포에 비해 자유롭게 연구할 수 있는 성체 줄기세포로 성과를 거뒀다는 점에서 줄기세포의 산업화를 촉진시키는 계기가 될 전망이다. ◆어떻게 치료했나=조선대 송창훈 산부인과 교수,서울탯줄은행 한훈 박사,서울대 수의대 강경선 교수 팀은 19년간 하반신 마비 상태로 지낸 황미순씨(37·여)에게 탯줄혈액에서 분리한 성체 줄기세포를 척수에 주입했다. 이 환자는 지난 85년 7월 사고를 당해 가슴척추뼈 곳곳이 골절돼 하반신 운동신경이 완전 마비되고 배꼽 아래 부위의 감각이 마비됐다. 연구팀은 황씨의 치료를 위해 그동안 모아온 제대혈 가운데 조직이 일치하는 제대혈을 찾아내 줄기세포를 분리 배양한 뒤 환자의 척수에 주사했다. 그러자 20일 만에 오른쪽 1번 허리척추뼈와 왼쪽 12번 가슴척추뼈가 각각 재생됐다. 치료 40일이 지난 현재는 좌우측 2번 허리척추뼈가 재생된 것으로 확인됐다고 연구팀은 밝혔다. 황씨는 이날 기자 회견장에 나와 "사고 후 움직이지 않던 발가락이 움직이는 등 몸 상태가 나아지고 있다"고 말했다. ◆줄기세포 실용화 가능성 확인=이번 성과는 줄기세포,특히 성체 줄기세포의 상용화를 앞당기는 데 크게 기여할 것으로 보인다. 배아 줄기세포 연구가 인간복제라는 윤리문제 등으로 어려움을 겪고 있는 반면 성체 줄기세포는 윤리적 제약이 없어 쉽게 연구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이번 개가를 계기로 줄기세포를 이용한 단순 연구 차원이 아니라 상용화를 위한 임상연구가 본격화될 것으로 전망된다. 앞으로 척수마비뿐만 아니라 각종 난치성 질환에 대한 줄기세포 적용 연구와 성과가 속속 나올 것으로 예상된다. 그러나 치료 결과를 좀 더 지켜봐야 한다고 의학계 일부는 지적하고 있다. 시험대상이 한 명인데다 결과를 완전히 확인하기까지는 시간이 더 걸릴 것이므로 성급한 판단은 금물이라는 것이다. 오일환 가톨릭의대 교수는 "성체 줄기세포가 척수마비에 효과를 나타낼 수 있는 가능성은 충분하다"면서 "하지만 치료효과 확인을 위해서는 좀 더 시간을 두고 지켜본 뒤 논문을 통해 검증받는 작업이 추가로 필요하다"고 말했다. ◆줄기세포 연구 어디까지 왔나=줄기세포에 관한 임상연구는 전세계에서 보고되고 있다. 뇌출혈로 반신불수의 몸이 됐던 한 브라질 여성이 뇌에 줄기세포 이식 수술을 받고 마비에서 회복됐다고 AFP가 최근 보도했다. 심한 류머티스 관절염을 겪던 미국의 여성은 노스웨스턴대학병원에서 여동생의 줄기세포를 이식받아 거의 완치됐다. 미국 텍사스대는 줄기세포를 이용해 암을 치료하는 기술을 개발했다고 발표했고,캐나다 토론토대는 인간의 망막 줄기세포를 배양해 동물의 눈에 이식해 여러 망막세포로 분화시키는 실험에 성공했다. 국내에서도 여러 대학과 연구소에서 줄기세포 연구를 하고 있다. 특히 황우석 서울대 교수의 인간 배아줄기세포 연구에 전세계가 주목하고 있기도 하다. 최근엔 아주대 안영환 교수가 식품의약품안전청에서 성체 줄기세포 치료제의 시험을 승인받아 뇌출혈,파킨슨병,뇌경색 환자들을 대상으로 임상에 나섰다. 줄기세포의 일종인 조혈모세포는 백혈병이나 악성빈혈 치료는 물론 류머티스 관절염 루푸스 등의 자가면역질환 등에 활용되고 있다. 알츠하이머병이나 파킨슨병 환자에게는 신경줄기세포를,당뇨병 환자에게는 췌장줄기세포를 이식하는 연구도 각각 진행되고 있다. ◆용어설명◆ 줄기세포=간 심장 피부 연골 등 각종 장기나 다양한 세포로 변할 수 있는 모(母)세포를 말한다. 수정란에 들어 있는 배아줄기세포와 탯줄혈액 및 골수,상피조직 등에 들어 있는 성체 줄기세포가 있다. 기능별로는 만능세포,복수기능세포,다기능세포 등 세 종류가 있다. 장원락 기자 wrjang@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