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용성 회장=23일자 한경을 통해 회장님의 미국식 스톡옵션 제도에 대한 비판을 잘 읽었다. 하지만 현재 한국 재계에서는 회사 중역뿐 아니라 전 직원에게 발행주식의 20% 범위 내에서 스톡옵션을 주는 제도의 입법을 추진하고 있다. 우리는 스톡옵션이 직원들이 회사를 자신의 회사같이 생각하고 일을 하게 하는 좋은 제도라고 보고 있다. △이나모리 명예회장=전직원에게 스톡옵션을 부여하는건 좋은 방법이라고 생각한다. 미국식 스톡옵션이 좋지 않다는 건 몇 명에게만 방대한 보수와 스톡옵션을 주는 방식 이어서 경영자가 단기 실적을 위해 부정을 행할 가능성이 크기 때문이다. 전직원에게 스톡옵션을 지급한다면 찬성이다. 사실 교세라도 전직원에게 스톡옵션을 줬다. 45년 전 회사를 차리면서 내가 받은 주식을 간부사원들에게 모두 나눠줬다. 주식을 주면서 "노력해서 일하면 이 주식이 가치가 있을 수도 있지만 영원히 종이 쪽지로 남을 수도 있다"고 말했다. 모든 임직원이 주식이 그냥 종이 쪽지가 될 수도 있다는 위기의식으로 열심히 일해 사업을 성공시킬 수 있었다. 지금은 그 주식이 생각지도 않은 큰 돈이 돼서 모두가 기뻐하고 있다. △박 회장=지난 85년 플라자 합의 이후 달러당 엔화 환율이 2백40엔에서 1백엔까지 떨어지는 등 급격한 엔고 현상이 지속됐지만 교세라는 이를 잘 극복한 것으로 알고 있다. 최근에도 달러 가치가 폭락하는 비슷한 현상이 일어나고 있는데 한국 기업들에 환율하락을 극복할 수 있는 방법을 충고해 달라. △이나모리 회장=그 당시에는 정말 살고 싶지 않을 정도로 힘들었다. 여러 방안을 고심해봤지만 역시 생산성을 높이고 원가를 절감해 회사의 체질을 강화하는 것밖에는 방법이 없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직원들에게 이대로 가면 회사도 망하고 일본도 망한다며 생산성을 높이자고 끊임없이 강조했다. 한국도 외환위기를 극복한 저력이 있는 만큼 이번 사태를 충분히 극복할 수 있을 것으로 믿는다. △박 회장=일본은 '일본주식회사'로 불릴 만큼 정부와 기업 간의 관계가 좋다고 알고 있다. 그런데 한국은 기업의 희망대로 잘 되지 않는다. 일본의 정부와 기업이 그토록 협력을 잘 하는 비결은 무엇인가. △이나모리 회장=일본 기업과 정부가 협력을 잘한다고 알려져 있는데 실제로는 그렇지 않다. 경제산업성이 많은 부분을 컨트롤하는데 전자 반도체 등 대규모 사업에 대해서는 협조가 잘 이뤄진다. 그러나 대부분의 기업은 정부와 상관없이 자체적으로 성장하고 있다. 교세라도 마찬가지다. 교세라는 오히려 정부가 방해를 했는데도 잘 성장했다. △박 회장=한국에서는 기업에 대한 규제철폐가 큰 이슈로 떠오르고 있다. 총리실 직속으로 태스크포스팀이 만들어졌을 정도다. 일본 정부도 30년 가까이 규제를 없애는 노력을 해왔다고 알고 있는데 어느 정도의 효과가 있었나. 혹시 말잔치로 끝나지는 않았나. 한국 기업들이 반면교사로 삼을 수 있을 것 같다. △이나모리 회장=일본에서도 지난 30년 동안 규제완화를 위해 노력은 해왔지만 좀처럼 이뤄지지 않고 있다. 외형만 보면 규제가 많이 완화된 것처럼 보이지만 관이 컨트롤하고 있는 부분이 아직 굉장히 많다. 가끔은 실망스러울 정도다. 20년 전에 나는 DDI라는 통신 회사를 시작했는데 당시에는 NTT라는 거대 국영회사가 있었다. 당시 NTT를 민영화해 해체한다는 얘기가 있어 우리도 지역과 장거리 전화,이동통신 사업에 진입하려고 했다. 그러나 NTT가 해체되지 않아서 국내 장거리 전화 사업만으로 시작해야 했다. 규제완화는 이뤄지지 않고 자유화만 이뤄져 많은 어려움을 겪었다. 지금은 DDI가 일본 2위의 종합통신회사인 KDDI가 됐다. 성공한 건 다행이지만 그 과정에서 화가 날 정도로 규제완화가 이뤄지지 않았다. 규제는 국민의 목소리에 의해 완화돼야 한다고 생각한다. 완화 정도가 아니라 철폐돼야 한다. 관에서 하고 있는 사업은 모두 민영화돼야 한다. 그래야 경제가 발전할 수 있다. △박 회장=미국 뉴질랜드 등에서는 규제완화가 잘 이뤄졌고 굉장히 성공적이었다. 그러나 한국 일본같은 동양권 국가들은 잘 안되고 있다. 이는 무슨 차이라고 보는가. 문화의 차이인가. △이나모리 회장=맞다. 문화의 차이다. 한국과 일본 중국은 역사가 길고 통치자인 왕이 있었다. 통치자 밑에 민중이 있고 통치자의 말에 따라 살아가는 것이 몸에 배어 있었다. 따라서 규제완화가 어렵다. 미국과 뉴질랜드는 사람들이 모여서 이뤄진 신생국가라서 규제완화가 상대적으로 쉬웠다. 한국 일본은 미국 뉴질랜드만큼의 성과를 올리려면 오랜 시간이 필요할 것이다. △박 회장=한국과 일본 양국은 기업 구조조정의 방식에서 많은 차이가 난다. 한국은 지난 97년 외환위기 당시 국제통화기금(IMF)으로부터 구제금융을 받으면서 미국식으로 급격한 구조조정을 해야 했다. 같은 시기에 일본은 '잃어버린 10년'이라고 불릴 정도로윷㏊옛?구조조정을 해왔다. 지금 돌이켜보면 일본은 이제 구조조정이 효과를 보기 시작하는 것 같다. 한국은 급격한 구조조정으로 조금 나아진 것 같더니 지금은 경제가 활성화되지 못하고 있다. 성장률도 5∼6%는 돼야 하는데 올해 4% 대에 머물 것으로 보인다. 기업 구조조정을 일본과 같이 동양식으로 천천히 해야 한다고 보나,한국과 같이 서양식으로 빨리 해야 좋다고 보나. △이나모리 회장=어느 쪽이 더 좋다고 답은 못하겠다. 하지만 나는 일본의 경우 너무 천천히 했다고 생각한다. 10년동안 국민들이 너무 고생을 많이 했다. 좀 더 빨리 부동산이나 금융 개혁을 해야 했다. 내가 보기엔 한국 방식이 더 좋은 것 같은데 확신은 못하겠다. △박 회장=한·일간 자유무역협정(FTA) 협상을 하고 있다. 한국측에서 가장 크게 기대하고 있는 건 일본이 부품 소재 사업을 한국 내에 투자해서 한국 기업들은 싼 가격에 부품소재를 살 수 있고 일본 세트메이커들도 한국에서 생산된 부품을 관세 없이 싸게 가져갈 수 있다는 점이다. 교세라도 부품소재를 많이 생산하고 있는 것으로 아는데 FTA를 통해 이같은 효과가 실제로 나타날 수 있을 것으로 보는가. △이나모리 회장=FTA는 한·일간뿐만 아니라 주변국가들까지 포함해 절대적으로 체결돼야 한다. 협상 과정에서 불이익과 마찰이 있을 수도 있지만 그걸 극복해서 반드시 체결해야 한다. 이것이 양국이 모두 번영하는 길이다. 교세라도 한국에 2개의 공장을 갖고 있다. FTA가 체결되면 이 공장을 키워서 한국의 고용과 수출에 기여할 것이다. △박 회장=회장께선 45년 전 창업 당시 종이쪽지였던 주식을 지금은 엄청난 재산으로 만들었다. 한국의 젊은이들도 회장님과 같은 사업가의 꿈을 키우며 창업을 준비하고 있다. 마지막으로 이 젊은이들에게 한마디 해달라. △이나모리 회장=젊은이들이 창업을 희망하는 건 한국이나 일본이나 마찬가지다. 창업을 할 때는 자신의 욕망을 원동력으로 경영을 해 나가겠지만 욕망만 갖고 창업을 하면 안된다. 성공은 할 수 있어도 오래가지는 못한다. 기업은 사회에 공헌을 해야 영속성이 있다. 자신의 욕심만으로 경영을 하지는 말라고 얘기하고 싶다. 정리=유창재 기자·사진=김병언 기자 yoocool@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