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일(현지시간) 치러질 미국 대통령 선거에서 한판 대결을 벌이는 공화당의 조지 부시 대통령과 존 케리 민주당 대통령 후보는 군경력을 비롯한 개인적인 이력에서 뚜렷한 대조를 이룬다. 케리 후보는 동부의 명문가에 태어나 일류대를 졸업한 베트남전 영웅 출신이며상원의원을 4번이나 지내는 등 전형적인 미국의 엘리트 코스를 밟았다. 반면 부시대통령은 할아버지는 상원의원, 아버지는 대통령을 지낸 화려한 가문 출신이지만 청년기 방황을 거쳐 사업에서 능력을 발휘한 뒤 정치에 입문한 인물이다. ◇출신 배경과 사회 경력 케리 후보는 1943년 제2차 세계대전 참전용사이자 외교관을 지낸 아버지와 출판재벌 포브스 집안 사람인 어머니 사이에서 태어났다. 그는 베트남전 참전후 반전운동가로 변신했으며 이를 바탕으로 정치권에 발을 들여놓았다. 1972년 의원 선거에서 실패한 케리 후보는 이후 법과대학원을 졸업하고 법조인의 길을 걷는다. 1982년 매사추세츠 부지사에 당선한 그는 1984년 매사추세츠주 상원의원에 선출된 후 내리 4선(選)을 기록했다. 케리 후보는 1988년 첫 부인과 이혼한 뒤 케첩 재벌 하인즈가의 며느리로 상원의원이었던 남편을 사고로 잃은 테레사 하인즈 여사와 재혼했다. 재벌가의 상속을받은 부인 덕분에 그는 `미국에서 가장 부유한 정치인' 명단에 항상 오른다. 특히 케리 후보는 아직도 미국 국민의 가슴에 신화로 남아 있는 존 F. 케네디대통령과 여러가지 면에서 유사한 점이 많다. 그는 학창 시절 케네디 대통령을 선망의 대상으로 삼았다고 한다. 케리 후보와 케네디 전 대통령은 매사추세츠 출신이자 상원의원, 해군 전쟁영웅이란 점에서 이력이 일치한다. 이름 이니셜마저 JFK(존 포브스 케리-존 피츠레랄드케네디)로 똑같다. 케네디 전 대통령은 아일랜드 이민자의 후손이었고 케리 후보의친할머니는 동유럽 출신의 유태인이다. 케리 후보는 분명 미국사회의 `주류'임에는틀림없지만 부시 대통령과는 달리 최상위 `WASP(앵글로색슨계 백인 신교도)' 계층은아니라고 할 수 있다. 부시 대통령은 미국에서 케네디가(家)와 쌍벽을 이루는 정치명문 집안인 부시가(家)에서 1946년 출생했다. 할아버지 프리스콧 부시가 상원의원을 지낸 동부 코네티컷 주에서 태어났지만 아버지 부시가 석유사업을 하는 텍사스주에서 성장했다. 부시의 증조부 새뮤얼 부시는 철강산업에 손을 대 재산을 축적했고 아들 프리스콧을 세인트루이스 출신의 월가 거물인 조지 허버트 워커의 딸 도로시와 결혼시켜명문일가를 이룬다. 부시 대통령과 아버지 부시는 모두 텍사스에서 석유사업으로 기반을 일군 후 정계로 진출하는데 외가의 도움이 컸던 것으로 알려져 있다. 부시 대통령은 예일대를 졸업했지만 로스쿨 시험에 낙방해 술과 연애로 젊은 세월을 보내는 등 방황기를 거쳐 40세부터 놀라운 사업수완을 보이기 시작했다. 이 때까지 아무도 그가 전세계의 운명을 좌우하는 미국 대통령이 되리라고 생각하지 못했다. 석유사업에서 성공한 부시 대통령은 텍사스 레인저스 프로야구단을 인수하면서인기가 급상승해 1994년 텍사스 주지사에 당선한다. 그 후 주지사에 재선하자 공화당은 그를 차기 대선 후보로 점찍었다. ◇군대 경력 부시 대통령은 지난해 5월 직접 전투기를 몰고 항모 에이브리햄 링컨호에 내리는 이벤트를 연출하면서 이라크전의 사실상 종전을 선언했다. 당시 군 통수권자로서의 그의 위상은 크게 올랐다. 그러나 민주당 대통령 후보 경선 막바지에 부시 대통령의 병역기피 의혹이 불거지면서 그의 군경력에 새삼 관심이 쏠리기도 했다. 케리 후보와 부시 대통령은 베트남전이 한창이던 1960년대 후반 똑같이 명문 예일대를 졸업했다. 그러나 부시 대통령은 당시 다른 특권층 젊은이들처럼 상대적으로안전한 주방위군 공군에 복무하게 된다. 그런데 그나마 부시 대통령이 주방위군 복무를 제대로 안 했다는 의혹이 제기됐다. 텍사스주 방위군에서 앨라배마주 방위군으로 소속을 옮긴 기록은 있으나 그후같은 부대에서 근무한 사람 중 그를 봤다는 사람이 없다는 것이다. 반면 케리 후보는 반전론자로 알려졌지만 조국의 부름을 받고 해군장교로 베트남전에 참전해 혁혁한 전공을 세운 전쟁영웅 출신이다. 은성훈장과 동성훈장을 받았고 전투 중 세 차례 부상을 당한 이력은 그의 탁월한 무공을 말해준다. 그러나 케리 후보는 제대 후 반전운동의 기수로 맹활약한 것이 계기가 돼 정치에 입문했다. 특히 현재 이라크에서 미군 전사자가 속출하는 상황에서 민주당은 이번 대선을 `전쟁영웅 케리'와 `탈영병 부시'의 대결구도로 몰아가기도 했다. (서울=연합뉴스) 유창엽 기자 yct9423@yn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