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무현 정부가 "정권의 명운을 걸고 추진하겠다"고 공언했던 신행정수도 건설사업이 헌법재판소의 '위헌'판결로 원점으로 되돌아감에 따라 경제의 불확실성이 한층 커졌다. 정부가 지난 2년간 수도 이전을 골간으로 하는 '국토·지역균형발전'을 핵심 개혁 아젠다로 추진해왔으나 헌재 판결로 추진동력을 상실하게 됐고,그 여파로 전반적인 경제정책에 대한 신뢰 추락이 불가피해졌기 때문이다. ◆국가균형발전 5개년계획 차질 불가피 노무현 대통령은 지난 8월20일 "과학기술 혁신이 제1차적 과제이긴 하지만 여러 사람들이 동의하는 만큼 저절로 간다"며 "실제 정책의 우선 순위 1번은 균형발전이고,중요한 혁신 과제로 가장 힘을 쏟고 있는 정책"이라고 말했다. 신행정수도 건설 계획이 국가균형발전의 가장 중요한 '축'이고 노무현 정부가 국가균형발전에 전력투구해 왔다는 점을 감안하면 이번 헌법재판소의 '행정수도 이전 위헌'판결은 균형발전 자체를 흔든 대사건이다. 정부는 지난 8월 국무회의에서 의결한 '제1차 국가균형발전 5개년 계획안'에서 "신행정 수도를 중심으로 전국 어디서나 2시간 이내에 접근할 수 있는 'ㅁ'자형 순환도로망을 건설하고,이를 토대로 16개 광역자치단체별로 전략산업을 육성하겠다"는 구상을 확정했었다. 국가균형발전 계획에서 신행정수도라는 '핵'이 빠져나가면 주변의 산업입지 여건도 달라지므로 계획 수정이 불가피하다. 행정기능이 빠져나간 수도권을 국제금융·비즈니스·첨단산업의 전진기지로 삼겠다는 것과 수도권 규제 완화를 통해 경쟁력을 유지하겠다는 구상도 무산될 수 밖에 없다. 행정수도 이전을 전제로 한 수도권 공장총량제 완화 등 규제완화가 축소되면 기업 경영에도 차질이 불가피할 전망이다. 2백여개 공공기관을 지방으로 이전하거나 기업을 지방으로 유치하는 계획도 무산될 가능성이 높아졌다. 국가 균형발전과 연계된 동북아경제중심 구축,정부혁신 및 지방분권 등 다른 핵심 국정과제들도 적지않은 타격을 입을 것으로 예상된다. ◆경제 불확실성 증폭 여부가 관건 오문석 LG경제연구원 상무는 "수도 이전을 하더라도 첫 삽을 뜨는 것은 2007년 이후이고 수도권 과밀과 공동화 문제가 경제에 직접적인 영향을 미치는 것도 아니다"고 말했다. 오 상무는 그러나 "현 정부가 정치적승부처로 삼았던 정책이 일격을 맞으면서 정책 리더십이 훼손됐고,이것이 경제로까지 파급될 경우 정책 추진력이 약화될 수 있다"고 우려했다. 행정수도 이전사업이 위헌 판결을 받은 사실 자체보다는 현 정부가 어떻게 대응하느냐에 따라 경제에 미치는 파장이 달라진다는 얘기다. 노무현 정부가 특유의 승부사 기질을 발휘해 '대통령 신임 연결'등을 거론하며 개헌과 국민투표에 나설 경우 올해초 탄핵정국과 비슷한 상황으로 빠져들 가능성도 예상된다. 국내외 투자자 이탈로 인한 주가 하락,심리 위축으로 인한 민간소비 침체 등으로 경제가 더 큰 위기로 빠져들 수 있다. 전주성 이화여대 교수(경제학)는 "대립적인 정책 환경에서 이 문제(행정수도 이전 위헌판결)는 불확실성을 증폭시킬 것"이라며 "행정수도 이전과 관련된 비용과 효과 등 충분한 정보가 제공되지 않았다는 점을 감안하면 행정수도를 졸속으로 이전하는 것보다 위헌 판결을 계기로 행정수도 이전에 대한 충분한 공론화 과정을 거치는 것이 장기적으로 호재가 될 수도 있다"고 말했다. ◆'단기 쇼크' 치유가 관건 민간소비와 기업의 설비투자 등 경기와 관련된 지표들은 당분간 위축이 불가피할 전망이다. 행정수도 이전을 겨냥했던 부동산 투기자금이 일시에 묶여 시중자금 흐름을 바꾸고,충청권에 잇달아 들어서온 아파트들은 분양이 제대로 안돼 건설회사들이 자금난을 겪을 것이 우려된다. 신규 수주 감소로 건설 경기가 급랭해온 상황에서 충청권까지 침체되면 건설부문에서 대량 실업이 본격화될 수도 있다. 행정수도 이전을 전제로 공장을 새로 짓거나 이전하려 했던 기업들도 계획을 미룰 수 밖에 없다. 여기에다 주가하락 등으로 가계자산 가치마저 떨어지면서 소비위축이 장기화될 가능성이 우려돼 대책이 시급하다는 지적이다. 현승윤 기자 hyunsy@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