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이 지난 휴일을 낀 중국과 러시아, 영국 등 3개국 고위급의 평양 방문을 통해 드러낸 북핵 6자회담에 대한 입장은 유효한 체제라는 점은 인정하면서도 제4차 회담 참여시기에는 말끝을 흐린 것으로 요약된다. 6자회담 틀에 대한 입장은 기존 인식과 다르지 않지만 4차 회담에 대해서는 남한 핵실험 문제 등 최근 등장한 상황변수의 추이를 조금 더 지켜본 뒤 회담장에 나가도 늦지 않다는 쪽으로 방향을 잡아가고 있는 것으로 해석된다. 이번 평양 접촉에서 리창춘(李長春) 중국 공산당 정치국 상무위원과 세르게이미로노프 러시아 연방의회(상원) 의장은 각각 12일과 13일 김정일 국방위원장을, 빌라멜 영국 외무차관은 백남순 외무상을 만났다. 중국과 러시아측은 김 위원장에게 후진타오(胡錦濤) 국가 주석과 블라디미르 푸틴 대통령의 친서를 각각 전달하고 북핵 등 양국 현안을 논의한 것으로 전해졌다. 이들이 평양을 떠난 시기를 전후해 나온 방문 결과 소식은 먼저 9월중 제4차 6자회담 개최가 어렵다는 내용을 담고 있다. 라멜 차관은 14일 보도자료에서 "제4차 6자회담에 조건없이 참여할 것을 요구했으나 그들은 날짜를 정할 준비가 되지 않았다는 입장을 밝혔다"고 말했고 알렉산드르 알렉세예프 러시아 외무부 대사도 "9월 하순 개최가 옳다고 믿지만 여러가지 이유로 그렇게 되지 못했다"고 밝힌 것으로 전해졌다. 하지만 아직 6자회담의 유용성을 인정하고 있다는 북한의 입장도 함께 확인됐다. 중국국제방송은 쿵취앤(孔泉) 중국 외교부 대변인이 리 상무위원과 김정일 위원장이 "6자회담이 현재 조선반도 핵문제를 해결하는 유효한 체제라고 재천명했고 쌍방이 회담 진전을 가져오도록 노력할 것이라고 천명했다"고 전했다. 라멜 차관도 "궁극적으로 6자회담에 임할 것으로 보이지만 언제 복귀할 지는 알수 없다"고 전해 북한이 6자 틀에 대한 기대를 버리지 않고 있음을 시사했다. 이는 기존 북한의 입장과도 크게 다르지 않다. 북한 외무성이 미국의 대북 적대시 정책 등을 문제삼아 "미국은 우리가 6자회담실무그룹회의에 나갈 수 없게 하고 있다"(8.16), "미국과 마주앉을 초보적 명분조차 가질 수 없게 만들고 있다"(8.23) 등 강경발언을 되풀이했지만 거부 등 단정적 표현을 피한 점은 6자 틀에 대한 기대가 아직 남아 있음을 보여준다. 또 지난 11일 외무성이 남한의 핵실험 논란과 관련, "6자회담 개최문제와 연결시켜보지 않을 수 없다"고 경고하면서도 "미국이 대조선 적대시정책을 실천적으로 포기하고 우리 요구대로 대화를 통한 핵문제 해결에로 하루빨리 나와야 할 것"이라며 대화를 촉구한 것도 같음 맥락으로 해석된다. 결국 남한 핵 실험 문제의 해결 방향 등을 지켜보면서 주도권을 쥘 수 있는 적절한 회담시기를 잡겠다는 것으로 분석되지만 시기적으로 11월 2일 선거를 앞두고 달아오르고 있는 미국의 대선도 고려하지 않을 수 없는 상황이 됐다. 라멜 차관이 북한의 6자회담 복귀시기에 대해 "미국 대선이 북한의 결정에 영향을 줄 것"이라며 북한이 미 대선에 적지 않은 관심을 보였음을 시사한 점은 제4차회담 개최가 상당 기간 미뤄질 수 있는 가능성도 낳고 있다. (서울=연합뉴스) 정준영기자 prince@yonhapnew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