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업을 결의한 대한항공 조종사노조가 7일 파업을 철회하기로 사측과 전격 합의함에 따라 두달간 진행된 하투(夏鬪)가 사실상 막을내렸다.

올 하투는 주5일제 시행, 비정규직 문제와 같은 노동현장의 굵직한 현안에다 이라크 파병 문제까지 겹쳐 어느 때보다 뜨거울 것으로 예상됐지만, 장기적인 경기침체와 실업난에 따른 여론의 곱지 않은 시선으로 `조용히' 끝이 났다.

◆ 병원파업에서 조종사파업까지 = 병원노조는 주5일제의 본격적인 시행을 앞둔6월 10일 인력 충원과 비정규직의 정규직화, 사회공동기금 조성 등을 주요 쟁점으로내세우며 올해 하투의 신호탄을 쏘아 올렸다.

올해 처음으로 산별 교섭으로 전환한 병원노조는 중앙노동위원회의 첫 조건부직권중재 결정하에서 교섭을 벌이며 갈등을 거듭했지만, 의료공백에 따른 문제점이속속 드러나며 결국 파업 13일만에 자율교섭으로 파업을 마무리했다.

한미은행 노조는 시티그룹의 인수 후 고용보장 등을 내세우며 지난달 25일 총파업에 돌입, 금융권의 최장기 파업을 기록하며 사측과 힘겨루기를 했지만 정부의 공권력 투입 압박과 여론 악화로 18일만에 극적으로 타결됐다.

올 하투의 절정이 될 것으로 전망됐던 지난달 23일의 지하철 파업도 여론악화와노조 집행부의 내분으로 변변히 목소리를 내보지도 못한 채 `3일 천하'로 마무리됐다.

이어 3일 아시아나노조의 파업 찬반투표가 이례적으로 부결돼 노동계가 술렁였고 사업장을 이탈하며 19일동안 파업투쟁을 벌인 LG칼텍스정유 노조도 여론의 지원을 받지 못하고 업무복귀 시한인 6일 사실상 `투항'해야 했다.

7일 `항공대란'이라는 우려 섞인 시선 속에 진행됐던 대한항공 조종사노조의 노사협상이 타결, 파업이 철회되는 것을 마지막으로 올해 하투는 대단원의 막을 내렸다.

◆ 여론악화에 명분잃은 `하투' = 올해 하투가 별다른 소득을 얻지 못한 채 예상밖으로 빨리 마무리된 것은, 원만한 노사 교섭의 결과라기보다는 `여론의 뭇매'에노동계의 파업이 국민으로부터 외면당한 것이 가장 큰 원인이었다.

가뜩이나 경제가 어려운 마당에 국민의 따가운 시선을 받을 수밖에 없었던 파업은 명분을 잃고 갈팡질팡 헤맸다.

지하철 노조가 파업에 들어가자 지하철 공익근무요원이라는 네티즌이 인터넷에지하철 직원의 나태한 근무 실태를 고발한 글을 올려, "수조원의 적자를 해결하지못하면서 임금 인상은 가당치 않다"는 여론이 들끓었다.

지하철공사도 지하철 노동자의 임금과 복지 내용을 공개해 노조의 파업 명분을더욱 약화시켰다.

대한항공 조종사 노조 역시 "억대 연봉자가 또 임금인상이냐"는 사회적인 비난이 파업 투쟁을 가로막았고, LG칼텍스정유 노조도 인터넷에 평균 7천만원에 이르는임금 수준과 사원복지 정책이 공개돼 여론의 싸늘한 시선을 받아야 했다.

여기에 LG칼텍스정유 노조원이 고 김선일씨 살해장면을 패러디한 퍼포먼스를 한것이 알려져 노조는 도덕적인 비난까지 감수해야만 했다.

LG칼텍스정유 노조가 사업장을 이탈한 뒤 대학교 캠퍼스를 둥지 삼아 파업을 감행하려 했지만 가는 곳마다 잇따르는 퇴거 요청으로 쫓겨나듯 밀려나와야 했던 것은올 하투에 대한 `민심 이반'을 단적으로 보여주는 예다.

◆ 하투가 남긴 노동계의 과제 = 올해 산별교섭으로 전환한 병원노조는 중노위의 첫 조건부 직권중재 결정으로 자율교섭을 통해 노사 합의를 이끌어 냈지만, 서울대병원이 산별교섭의 일부조항 삭제를 요구하며 40여일간 독자적인 파업을 벌여 후유증을 남겼다.

정부는 지하철노조가 파업이 장기화될 경우 시민에 불편을 준다는 이유로 직권중재에 회부했고, LG칼텍스정유도 직권중재 결정을 내리는 잇단 강수를 둬 민주노총이 노사정대표자회의를 유보하는 등 노동계의 강한 반발을 불러왔다.

하지만 올해 처음 하투를 이끈 이수호 민주노총 위원장이 지난달 말 광화문 앞에서 폭염속에 삭발 노숙투쟁까지 벌였지만 크게 주목을 받지 못하는 등 노동계의투쟁은 냉랭한 사회 분위기에 묻혀버렸다.

힘겨운 경제상황과 여론악화 속에 그동안 사회적인 공감을 얻어왔던 `노동자=약자'라는 공식이 올해 하투에서는 여지없이 깨져버린 것이다.

민주노총은 산하 노조인 병원노조 문제 해결에 있어 서울대의 독자파업 해결에전혀 중재력을 발휘하지 못했고, 이라크 파병이라는 사회적 이슈까지 하투에 끌어들인 것이 결국 스스로 명분을 약화시키는 결과를 낳았다.

주5일제 등 하투의 쟁점과 별개 문제인 이라크 파병 문제를 연계하려다 보니 추진력이 떨어졌고, "정부가 이라크 파병을 강행하면 파업으로 맞설 것이냐"는 질문에민주노총 지도부 역시 명확한 대답을 못하고 딜레마에 빠졌던 것. 노동계는 올해 명분없는 하투로 잃어버린 `민심'을 되찾기가 매우 어려울 것으로 전망되는 가운데 급격히 허약해진 민주노총의 추진력과 지휘력을 회복해야 한다는 과제를 떠안게 됐다.

(서울=연합뉴스) 강훈상기자 hskang@yonhapnew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