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7대 국회에 처음 '입성'한 초선 의원들 사이에서 마이너스 통장 개설이 붐을 이루고 있다.

세비만 갖고는 의원으로서 제대로 활동할 수 없어서다.

이같은 '선(先)차입,후(後)상환'에는 야당은 물론 여당도 마찬가지다.

초선인 탓에 아직 후원 조직을 제대로 갖추지 못한 처지인데다 1백만원 이상 후원자는 실명을 공개해야 하는 등 까다로운 관련 법규를 의식하기 때문이다.

서울에 지역구를 둔 열리우리당 초선의 A의원.17대 임기가 시작된 직후인 지난 6월 중순 마이너스 통장을 개설,은행에서 돈을 빌렸다.

총선 전까지 시민운동에 전념해 오면서 '실탄'을 비축해둘 여력이 없어서였다.

그는 "중진 의원들은 선거법이 엄격해져 지역구 관리에 예전만큼 큰 돈은 들지 않는다고들 말한다"며 "그렇지만 미리 확보해둔 후원금이 없는 처지에서 남들처럼 의정활동에 나서려면 당분간 '적자 인생'을 살 수밖에 없다"고 토로했다.

경기 출신의 같은 당 초선인 B의원도 연초에 만든 마이너스 통장으로 활동비를 충당하고 있다.

그는 "후원조직을 구축하려면 적어도 임기 초반 2년 정도는 부지런히 뛰어다녀야 할 것 같다"고 한숨을 쉬었다.

다만 후원 네트워크가 갖춰지고 나면 후반기 의정활동은 최소한 적자를 벗어날 것으로 기대하며 하루하루를 버티고 있다.

한나라당 초선들 역시 사정이 다르지 않다.

노동운동가 출신의 비례대표인 C의원은 최근 은행에서 마이너스 통장으로 1천5백만원을 빌렸다.

세비와 기존에 마련해둔 약간의 여유자금으로는 활동비에 턱없이 부족했다.

당직자 출신의 D의원은 "당직자를 그만둘 때 받은 퇴직금으로 겨우 버티고 있다"며 "이대로 가다간 나도 곧 마이너스 통장 신세를 져야 할 것 같다"고 털어놨다.

영남에 지역구를 둔 그는 항공료 등 교통비만 한달에 2백만원 이상 들어가는 상황이다.

초선들의 이런 '악전고투'는 고참 의원들에겐 '격세지감'으로 다가온다.

한 중진 의원은 "정치자금이 지금처럼 투명하지 못하던 시절에는 마이너스 통장은 상상도 못했다"며 "과거에는 지역구 관리에 매월 수천만원이 들어갔기 때문에 '검은 돈'의 유혹에서 자유로울 수 없었는데,이젠 오히려 홀가분해진 측면도 있다"고 털어놓았다.

또 다른 중진은 "정치자금법 개정으로 후원금 규제가 많아 연간 한도액 1억5천만원은 커녕 1억원도 채우기 힘든 상황"이라며 "3선인 나도 이런데 초선들이야 오죽하겠느냐"고 말했다.

박해영 기자 bono@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