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례 없는 더위가 전국을 달구고 있지만 국내 피서 경기는 '폭서특수'는 커녕 '침체'를 면치 못하고 있다.

해외 피서 경기의 대호황과는 대조적으로 동해안 해수욕장과 내륙의 레저ㆍ관광단지들은 기대에 못미치는 경기로 울상짓고 있다.

예전 같으면 휴가 한 달 전에는 예약을 해야 방을 잡을 수 있었던 강릉 속초 등 바닷가 콘도미니엄들은 성수기에도 불구하고 방이 남아 돌고 있다.

경주 보문단지 등 내륙 피서지들도 지갑이 엷은 '알뜰 피서족'만 넘쳐난다.

이 바람에 해마다 여름철이면 소비자들의 눈살을 찌푸리게 했던 '바가지 상혼'도 무릎을 꿇었다.

전문가들은 "고소득층은 물론 경제사정이 괜찮은 중산층까지 해외로 피서를 갔고 펜션 등 새 휴가 상품이 크게 늘어난데 반해 소득 양극화로 이런 상품의 주소비자인 중산층이 급격히 붕괴한 탓에 국내 피서지 경기는 썰렁할 수밖에 없다"고 진단하고 있다.

◆ 동해안 등 피서지 경기 '썰렁'

피서철마다 숙박난으로 몸살을 앓았던 동해안 인근의 콘도들은 휴가철이 '피크'에 접어들었음에도 불구, 객실이 남아 도는 기현상이 빚어지고 있다.

매년 7월20일부터 8월20일까지는 빈 방을 찾기 어려울 만큼 인기가 높았던 강원도 A콘도의 경우 지난 7월10일 해수욕장이 개장한 이후 지금까지 예년과 같은 숙박전쟁을 찾아볼 수 없다.

객실 예약이 그럭저럭 찬 것은 7월31일부터 6일까지 1주일뿐이다.

A콘도 관계자는 "동해안 인근 콘도들이 대부분 비슷한 상황에 처해 있다"며 "예약률은 떨어지고 예약 취소율은 높아져 골치를 앓고 있다"고 말했다.

부산 해운대에 밀집한 관광호텔과 모텔들도 상황은 비슷하다.

해운대 R호텔은 평균 객실 이용률이 70%로 지난해보다 20%포인트나 줄었다.

K모텔도 지난해보다 10%포인트 정도 감소했다.

대한숙박업협회 관계자는 "불경기로 얼어붙은 경기 한파가 그대로 반영되고 있는 것 같다"고 말했다.

◆ 알뜰 피서족만 늘어

피서객들이 콘도나 호텔 대신 선택하는 곳은 찜질방, 대학 기숙사 등 저렴한 숙소다.

휴가철에 기숙사를 개방하는 강원대 등 강원도 내 대학들은 휴가 한 달 전에 예약이 끝난 상태.

부산 광안리해수욕장을 바라보고 있는 수영구 남천동 N찜질방은 오후 5시 이후에는 빈 자리를 찾기 힘들 정도로 피서객이 몰리고 있다.

삼척대 관계자는 "고등학교 교사와 고교생, 피서객 등을 대상으로 여름방학 기간 대학 기숙사를 저렴한 값에 개방하자 인터넷 예약이 폭주하는 등 큰 인기를 끌고 있다"며 "하루 1만3천원으로 매우 저렴한 것이 인기 비결인 것 같다"고 말했다.

소비가 움츠러들면서 해바다 반복되던 휴가지의 '바가지 상혼'도 자취를 감췄다.

강릉 경포해수욕장 북쪽에 위치한 자그마한 순긋해수욕장은 바가지 요금을 받지 않겠다는 의미로 '바가지가 확 깨졌어요'라는 대형 플래카드를 2개나 내걸었다.

순긋해수욕장의 한 상인은 "예년보다 손님들의 씀씀이가 줄면서 피서지 식당이나 위락시설의 요금이 내리고 있다"며 "요즘 같은 불경기에 바가지 요금을 요구하는 '간 큰 상인'은 없다고 봐야 한다"고 말했다.

◆ 고소득층 해외로 나가 국내 피서지 경기 더욱 위축

전문가들은 "국내 휴가지의 숙박료 등 서비스 경쟁력이 동남아 등지에 비해 떨어지는 데다 고소득층이 국내보다는 해외에서 즐기는 것을 마음 편하게 생각하는 사회 분위기 등으로 인해 해외 피서가 급증하고 있다"고 분석하고 있다.

인천국제공항공사에 따르면 피서 성수기인 7월20일부터 31일까지 출국자 수는 모두 89만5천6백60명으로 지난해 같은 기간(76만99명)보다 17.8%나 증가했다.

경기가 위축된 국내 피서지와는 대조적인 모습이다.

D여행사 관계자는 "국내의 경우 제주도 정도만 문의가 있을 뿐 동ㆍ남해안 등 전통적으로 강세를 보이던 피서지에 대한 관심은 줄어들었다"며 "국내보다는 해외 여행 위주로 휴가상품을 팔고 있다"고 밝혔다.

롯데관광 이순남 과장은 "휴가를 보내기 위한 해외 여행지로 가장 인기가 높은 곳은 동남아"라며 "동남아지역 예약률이 예년보다 20∼30%가량 늘었다"고 말했다.

인천=김인완ㆍ부산=김태현ㆍ송형석 기자 click@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