탈북자 2백30명이 27일 오전 9시 꿈에 그리던 한국의 품에 안겼다.

경의·동해선을 가로지르면 서너시간이면 족할 거리를 중국 동북부와 동남아 지역까지 무려 1만km를 돌고 돌아 서울에 왔다.

짧게는 1~2년,길게는 4~5년이 걸린 '고난의 여정'에 종지부를 찍은 것이다.

정부는 그러나 이들의 도착현장에 언론이 접근하는 것을 철저히 막았다.

대신 당국이 제공하는 '화면과 사진'을 쓰도록 했다.

이에 항의하는 언론에 대해서 정부는 "최근 북한의 서해 북방한계선(NLL)침범 문제로 남북관계에 냉기류가 형성되는 상황에서 언론이 이를 대대적으로 보도할 경우 남북관계가 경색될 수 있다"고 밝혔다.

북한을 자극하지 않겠다는 논리다.

정부는 이와함께 "해당 국가가 남북한과 동시수교를 통한 등거리외교를 펼치는 상황에서 '탈북자의 대량입국'을 공개적으로 추진할 경우 외교마찰이 불가피하고 향후 유사한 사례가 발생할 때 해당국가로부터 협조를 받기 힘들게 된다"고 설명했다.

하지만 정부의 '집단 탈북자 도착장면 비공개'는 국민의 알권리 침해일 뿐 아니라 당당하지 못한 외교의 전형이라는 지적을 면할 길이 없다.

정부는 그동안 중국의 국회 해킹사건,고구려사 왜곡사건 등이 터질 때마다 '조용한 외교'를 강조해왔다.

국회 해킹사건의 경우 외교부는 지난 14일 리빈 주한 중국대사를 소환,양국 수사당국간 공조에 대한 중국측의 적극 협조를 당부해놓고도 15일에야 이를 확인하는 브리핑을 했다.

중국을 자극하지 않으려고 애를 쓰다가 '공식 항의해야 한다'는 여론이 비등하자 뒤늦게 수사협조를 요청했다고 발표한 것이다.

'조용한 외교'의 취지가 아무리 좋다 하더라도 남발될 경우 국민들로부터 오해를 받을 소지가 있다.

정부 관계자들은 과거 군사정권에서 북한주민의 귀순을 정치적으로 이용한 것만큼이나 '꼼수외교'에도 문제가 있다는 것을 명심하기 바란다.

탈북자 문제를 국제적으로 공론화해 해결책을 모색해야 하는 시점이기 때문에 더욱 그렇다.

정종호 정치부 기자 rumba@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