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의회 하원이 21일(현지시간) 북한 주민들의인권 보호를 목적으로 한 '2004 북한인권법안'을 통과시키자 정부 당국이 곤혹스러워하는 분위기다.

정부가 난처해하는 이유는 법안의 '북한난민보호' 조항 중 "북한 주민들은 한국의 헌법에 따라 향유하는 한국민이 될 수 있는 법적인 권리 때문에 미국내에서 난민지위나 망명 자격을 얻는 데 방해를 받지 않는다"는 부분 때문이다.

그동안 북한 주민 또는 탈북자들은 법적으로는 남한 주민과 똑같은 대한민국 국민이기 때문에 미국으로부터 난민 지위나 망명 자격을 취득하는 것 자체가 한국 정부에게는 대단히 부담스러운 사안이 될 수밖에 없다.

이에 따라 탈북자에게 난민 지위 부여를 골자로 한 북한인권법안이 지난 3월 하원에 상정된 이후 정부 당국은 외교 채널을 통해 미국측에 '불편한' 정부 입장을 다각도로 전달해온 것으로 알려졌다.

정부 관계자는 21일 "미 하원에 법안이 제출되자 초기에 정부는 강한 (반대) 입장을 보였다"면서 "이로 인해 여러 가지 제도적 장치들이 삭제되거나 수정되는 결과를 가져왔다"고 말했다.

이 관계자는 "아직 (하원을 통과했을 뿐) 상원 통과와 대통령의 재가 등 입법화를 위한 절차가 남아 있다"며 앞으로 더 지켜보겠다는 자세를 보였으나 불편한 심기를 감추지 못했다.

정부 고위 당국자는 "북한인권법안을 살펴본 결과 구체적인 조항이 많이 순화된느낌"이라고 전제한 뒤 "하지만 입법 취지에서 미국과 한국 정부의 대북정책의 차이점을 여실히 드러내고 있다"고 곤혹스러워 했다.

그는 정부의 대응책을 묻는 질문에 "정부가 문제를 제기하면 자칫 내정 간섭으로 비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며 신중한 입장을 보였다.

하지만 남북한이 동시에 유엔에 가입한 상태에서 남북은 별개의 독립국가이므로미국이 탈북자에게 난민지위를 부여하고 망명을 허용하는 것도 가능하다는 현실적인시각도 만만치 않다.

익명을 요구한 법학자는 "북한인권법안은 한국 헌법을 존중하되, 그 대신 갈 곳없고 돌아갈 수 없는 탈북자들이 미국으로 망명을 신청할 경우 받아들이겠다는 의지의 표현으로 볼 수 있다"고 말했다.

탈북지원단체의 회원은 "법안 통과로 인해 미국은 물론 한국의 비정부기구(NGO)들의 탈북지원 활동이 본격화될 것으로 기대된다"며 "탈북자 문제에 대해 미국 정부보다 소극적인 자세를 보여온 한국 정부로서 상당히 부담스런 상황이 벌어졌다"고주장했다.

(서울=연합뉴스) 문관현 기자 khmoon@yn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