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선일씨 피랍사건이 이라크 무장세력의 경고대로 참혹한 결말로 끝남에 따라 정부가 내세우는 파병 목적이 이라크에서 한국인들의 안전을 담보하지 못한다는 사실이 입증됐다. 21일 새벽 피랍사실이 알려진 직후 김씨의 석방.구출을 위해 다양한 채널을 가동한 정부는 이번 사건을 주도적으로 보도한 아랍 위성TV 알-자지라를 활용, 한국군의 이라크 파견 목적이 인도적인 평화재건임을 강조했다. 한국군의 이라크 파견 목적이 이라크의 평화와 안정을 위한 것인 만큼 이를 제대로 알릴 경우 김씨가 애꿎게 목숨을 잃는 사태를 막을 수도 있다는 생각을 했던 것으로 보인다. 이는 노무현 대통령이 23일 대국민 담화를 통해 "우리의 파병은 이라크와 아랍국가에 적대행위를 하려는 것이 아니다. 이라크의 복구와 재건을 돕기 위한 것"이라고 강조한 대목에서도 여실히 드러난다. 그러나 이라크인들의 대다수가 이같은 점을 인정하고는 있지만 미국이 테러공격으로 규정하는 `저항운동'을 이끌고 있거나 이에 동조하는 이라크인들의 생각은 완전히 다르다. 저항세력들은 미국의 의도에 맞게 이라크 체제가 안정화돼 가는 것을 바라지 않는다. 이는 전후 더욱 기승을 부리는 각종 테러공격을 통해 입증되고 있다. 한국정부가 이라크 국민들에게 좋은 취지로 받아들여지길 원하는 파병목적이 이라크내 한국인의 안전을 절대로 담보할 수 없는 이유는 바로 거기에 있다. 또 일부 이라크 지식인들 사이에서는 우리 정부의 희망과는 어긋나게 한국군 파병이 미군의 점령통치를 고착화시키는 것일뿐 이라크 평화재건과는 별 상관이 없다는 시각이 적지 않다. 지난 4월 연합뉴스와 인터뷰를 가졌던 이라크지식인전선(National Front of Iraqi Intellectuals)의 하미드 제이단 선임 회원은 이라크 지식인들의 그같은 시각을 잘 보여주고 있다. 바그다드 알-만수르 지역에 본부가 있는 이라크지식인전선은 지난해 후세인 정권 붕괴후 종파.정파간 이해를 초월한 국민통합을 기치로 내걸고 출범한 독립조직으로, 대학교수 등 이라크내 명명가들이 회원으로 참여하고 있다. 그는 당시 한국군 파병은 평화재건을 위한 것이라는 설명에 대해 "현상황은 재건을 말할 단계가 아니다"며 "점령군(미군)에게 직.간접적으로 정신적, 물질적 지원을 제공하는 행위는 그들의 불법주둔을 강화시키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지난해 5월1일 미국측의 일방적 종전 선언에도 불구하고 이라크는 여전히 전쟁중인 만큼 한국이 정말로 이라크의 재건지원을 돕고자 한다면 전쟁이 완전히 끝난 뒤 유엔 깃발아래 군대를 보내는 것이 옳다는 것이다. 김씨를 참수한 무장조직 `유일신과 성전'이 한국인에게 보내는 성명을 통해 "당신들의 군대는 이라크인들을 위해 이곳에 온 것이 아니라 저주받을 미국을 위해 왔다"고 주장한 것도 비슷한 맥락에서 이해할 수 있다. 미국내 외교 소식통들도 이라크 저항세력들은 김씨 참수를 통해 미국의 협조자는 이라크의 적이며 이에 따라 언제든 살해할 것이라는 메시지를 전달하려 한 것으로 보인다고 입을 모으고 있다. 익명을 요구한 한 소식통은 김씨 납치범들은 지난 4월 일본인 납치 사건의 범인들과는 분명히 다르다면서 "이들은 돈이 아닌 오로지 정치적 동기에 의해서만 움직였으며 따라서 한국의 협상단이 김씨의 구명 협상을 하기는 힘들었을 것" 이라고 말했다. 이 소식통은 "이번에 납치범들이 미국의 협조자는 무조건 살해한다는 메시지를 남겼다면, 미국은 어떤 난관에도 불구하고 이라크에서의 테러전이 계속될 것이라는 답장을 던져줬다"고 설명했다. 따라서 이라크 추가 파병이 불가피하다면 저항세력의 집중 타격 목표가 될 수 있는 이라크 교민들을 전면 철수시키는 방안을 검토할 필요가 있다는 지적이다. (서울=연합뉴스) parksj@yn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