곽재용 감독의 신작 '내 여자친구를 소개합니다'는 전작 '엽기적인 그녀'(2001년)와 '클래식'(2003년)처럼 운명적인 사랑에 관한 이야기다. 두 전작이 로맨틱코미디와 멜로란 장르의 한계에 갖혔다면 신작은 각 장르를 결합해 표현의 스펙스럼을 확장했다. 사랑의 기쁨은 로맨틱코미디로, 슬픔은 멜로, 절절한 그리움은 팬터지양식으로 드러난다. 시간적으로는 로맨틱코미디로 출발해 멜로로 전환했다가 팬터지물로 방향을 튼다. 여경찰 경진(전지현)은 교사 명우(장혁)를 소매치기로 오인해 체포한다. 두 사람의 우연한 만남은 필연으로 승화하고 마침내 운명이 된다. '활달한' 경진과 '소심한' 명우의 성격 대비는 '엽기적인 그녀'의 두 주인공들과 흡사하다. 작중 화자인 남성이 여자친구를 설명하는 전개 방식도 다르지 않다. 특히 경진은 '엽기적인 그녀'의 여주인공을 증폭시켜 '보다 순수하고 보다 엽기적으로' 형상화된 인물이다. 범죄현장에서 명우와 수갑을 찬 채 벌이는 경진의 활극은 홍콩느와르의 액션영웅 같다. 경찰 제복의 익명성을 살려 외적인 강인함을 강조했다. 반면 경진은 명우의 죽음으로 자살을 시도하는 연약한 면모도 갖고 있다. 경진의 활극이나 엽기적인 행동에는 개연성이 부족하고 작품의 리얼리티도 떨어뜨렸다. 그러나 이 작품의 관심사는 행위의 사실성이 아니라 환희와 고통 등 '사랑의 정서'다. 망자의 원혼을 불러내는 팬터지적 요소들은 사랑의 갈망과 그리움의 속성을 강조했다. 연인을 향한 갈망이야말로 삶과 죽음의 경계를 초월하고 우연을 필연으로 승화시키는 사랑의 원천이라는 메시지를 전달한다. 피천득선생의 수필집 '인연','바람개비','종이비행기' 등의 메타포들은 산 자와 죽은 자를 연결하는 교량역할을 한다. 경진이 명우의 환영과 대화하는 장면은 팬터지멜로 '사랑과 영혼'을 연상시킨다. 그러나 사랑의 슬픔으로부터 도피했던 데미 무어와 달리 전지현은 고통의 끝에서 새 희망을 발견한다. 인연의 순환을 암시하는 이 장면은 동양적인 세계관을 반영한 것이다. 명우의 내래이션이 처음과 마지막 장면에서 똑같이 등장하는 순환구조를 도입한 것도 마찬가지다. 서구의 직선논법에 근거했던 페드로 알모도바르 감독의 '내 어머니의 모든 것'에서는 작중화자인 아들의 죽음과 함께 어머니의 이야기로 전환됐었다. 3일 개봉,12세 이상. 유재혁 기자yoojh@hankyung.com